일본인들이 자랑하는 료안지(龍安寺)의 석정(石庭)은 어디에서 보나 15개의 정원석 가운데 하나는 보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단순하고 작은 정원인데도 숨겨진 하나의 돌 때문에 한눈으로 조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문명의 개방시대에는 더이상 속과 겉이 다른 ‘애매의 미학’은 통하지 않는다.
▼ 왜 「저팬 나싱」이 됐나 ▼
80년대만 해도 일본은 막강한 경제 기술 대국으로 모든 나라의 시기심을 사서 ‘저팬 배싱’(Japan Bashing·일본 때리기)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 거품이 걷히고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하자 저팬 배싱은 ‘저팬 패싱’(Japan Passing·일본 보내기)으로 변했고 다시 최근에는 ‘저팬 나싱’(Japan Nothing·일본은 없다)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배싱’이 ‘패싱’으로 ‘패싱’이 ‘나싱’으로 전락하게 된 변화는 지금까지 일본을 이끌어온 3N(NHK, NEC, NTT)이 오히려 정보화를 가로막는 벽이라는 농담 속에서도 발견된다.
차세대 텔레비전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개발해 왔던 NHK는 디지털 방식이 세계 주류를 이루는 멀티미디어의 도래로 큰 혼란을 빚었다. 뿐만 아니라 NHK라는 큰 나무는 케이블 TV를 비롯한 다양한 방송네트워크의 성장을 가로막는 그늘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본의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이 된 NEC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 독자적인 포맷이 일본 PC의 발전을 위한 보호막이 되었지만 글로벌한 호환성을 생명으로 하는 네트워크시대에는 폐쇄의 무거운 빗장이 되고 만다.
통신분야의 NTT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AT&T는 일찍이 독점체제에서 벗어나 여러 경쟁사로 나뉘어 정보 서비스와 기술을 발전시켜 왔지만 일본의 NTT는 아직도 독주하고 있는 거대한 성주(城主)다. 그래서 전화요금을 비롯한 각종 정보통신 서비스가 미국보다 처진 요인의 하나로 지적되기도 한다.
방송계 컴퓨터계 그리고 통신계가 한데 어울리는 21세기의 멀티미디어 환경은 3N의 앞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사회의 제조업 분야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은 러―일전쟁 직후처럼 과분한 자신감에 사로잡혀 공립학교의 영어시간을 주 5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이고 그것을 다시 3시간으로 축소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이렇게 글로벌 시대에 역풍을 일으킨 것은 더 이상 구미(歐美)에서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한 일본인들의 좁은 안목과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풀이다.
한마디로 일본의 위기는 공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폐쇄주의에서 개방주의로 과감하게 그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한 데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리즘의 어려움은 축소지향적인 일본 문화의 한계로 지적될 수도 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 때에도 처음에는 파죽지세로 연승가도를 달렸지만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전쟁 패러다임이 바뀐 말기에는 허망하게 무너지는 현상을 보였다.
▼ 낡은 패러다임 바꿔야 ▼
산업시대의 생산 양식에서는 여러 사람이 한데 뭉쳐 남들이 하는 대로 열심히 따라 일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지적 상품을 만들어내는 정보 생산양식은 개인의 독창성과 창조력 그리고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일본 사람들이 한때 USA의 U는 히피같은 언더그라운드 문화, S는 우주항공산업을 뜻하는 스페이스 그리고 A는 어뮤즈먼트 즉 디즈니랜드같은 오락산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비웃었지만 바로 그러한 USA가 미래 정보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오는 것임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미국의 정보기술을 주도하는 실리콘밸리는 바로 히피가 발생한 선 벨트 지역이었고 킹 폴리제 같은 새로운 정보산업의 스타들은 일본식 일벌레가 아니라 일하면서도 동시에 춤을 출줄 아는 어뮤즈먼트 문화의 신종 베짱이들이었던 것이다.
‘저팬 넘버원’이 어떻게 하다가 ‘저팬 나싱’이 되었는가. 남의 걱정이 아니다.
일본의 뒤통수는 우리의 앞날이기도 한 것이다. 새로운 2000년을 읽지 못하는 밀레니엄 버그는 컴퓨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일본을 통해서 배우자는 것이다.
이어령<이화여대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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