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는 단체로 전시회를 보러 온 아이들이 미술관 앞에서 왁자지껄하며 뛰어다니고 일요일 오후에는 전통예술을 공연하는 야외무대 앞을 애호가들이 느긋한 걸음으로 오고 간다. 외국인도 더러 눈에 띈다. 참 좋구나, 참 고맙구나, 교통도 불편한데 여기까지 찾아와 주시다니…. 한분 한분한테 머리숙여 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분들이 오시는 목적이 다 다르다. 많은 분이 한 장소를 이용하건만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별로 없다.
미술을 좋아하는 분들과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차 한잔을 앞에 놓고 토론을 벌이는 일도 없다. 공연장의 분위기도 다 다르다. 어느 공연에는 젊은 학생들이, 어느 공연에는 점잖은 분들이, 어느 공연에는 그 분야에 특별한 소양과 학식이 있는 분들만 앉아 있다. 출연자의 선후배나 가족만 박수를 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 나라의 예술이 매우 다양한 형태로 꽃피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연극을, 미술을, 오페라를 보고 즐기고 살면 그뿐이다.
그건 다 각자의 자유다. 그렇다. 예술의 전당은 그런 다양한 문화적 욕구들을 골고루 채워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복합문화공간’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래도 무언가 아쉬움을 느낀다. 각자가 좋아하는 것이 다 다를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적어도 이해라도 해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왜 그 음악을 그 연극을 좋아하는지 연유라도 묻고 서로 토론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느닷없이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찾아왔다가 이곳을 나갈 때에는 새로운 용기를 가슴에 품고 어깨를 펼 수 있다면…, 다음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와 오랜만에 시름을 잊고 온 가족이 환하게 웃을 수 있다면…, 학교를 졸업해도 취직의 길이 막막한 젊은이들이 찾아와 사색과 감동의 시간을 갖고 미래의 꿈을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다면…, 새로운 일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와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문화 속에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청사진을 머리 속에 그리며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 나가게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오고 가던 모든 분이 일년에 몇번쯤은 한 공간에서 울고 웃으며 뜨거운 감동을 같이 나눌 수 있다면…, 우리 사회를 그렇게 통합해 나가는 힘을 우리 ‘예술의 전당’이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오늘도 오고 가는 많은 분을 눈물겨운 감사의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나는 이런 꿈을 꾸어 본다.
문호근(예술의 전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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