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마지막타자 유지현의 공이 외야에서 잡히는 순간 ‘아, 이제 정말 이겼구나’하는 느낌이 비로소 들었다.
그때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알수 없는 뭔가가 뿌듯하게 올라왔다. 누군가가 “감독님 우리가 이겼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하고 외쳤다. 마운드에선 정민태가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엉엉 울고 있었다. 왠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눈에서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고맙다. 다 너희들이 열심히 해 준 탓이다.’
정말 야구란 모르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수 없다. 96년 초보감독으로 한국시리즈에 처음 올라 갔을 때는 도무지 뭐가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와 맞붙은 해태 김응룡감독이 태산처럼 커보였다. 역시 우승이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김응룡감독의 통솔력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때 그 소중한 경험이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내가 성인이 돼서 눈물을 보인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서울 대광고를 졸업하고 영남대에 가기위해 대구행 기차를 탈 때 왜 그리 서러웠던지. 그때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 당시 서울에 있는 대학들은 어느 한곳도 나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평소 나를 눈여겨봤던 배성서감독이 나를 불러주지 않았던들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6차전 초반 선발 김수경이 흔들렸을 때 이러다가 자칫 이 경기를 놓치는것이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스쳤다. 하지만 나는 수경이를 믿었다. 열아홉살밖에 안 먹었지만 수경이는 배짱이 두둑했다. 나는 코치진과 선수들을 절대적으로 믿는다. 감독이 코치와 선수들을 믿지 못하면 절대 우승할 수 없다는 게 내 신념이다.
일부에서는 내가 작전을 많이 거는 것은 선수들을 못믿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야구는 확률싸움이다. 기록상 승산이 적으면 되게 하는게 감독의 할 일이다. 우리팀은 그런 일이 없지만 가끔 감독이 투수를 바꾸려고 하는데 투수가 더 던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나는 비정하리만치 냉정한 김응룡감독의 스타일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감독은 한번 결정하면 천하 없어도 밀고 나가야 된다. 물론 그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감독의 몫이다.
스포츠란 역시 기세 싸움이다. 한번 기세에서 눌리면 아무리 실력 있는 팀이라도 꽁무니를 빼게 마련이다. 그래서 감독은 어렵다. 선수들에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끊임없이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7차전까지 갔었더라면 아무도 누가 이긴다고 장담 할 수 없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LG의 사기를 막는 것이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곧잘 나를 ‘여우’ 혹은 ‘제갈공명’으로 비유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수줍음 잘 타고 말주변 없는 전형적인 ‘촌놈’일 뿐이다. 오해도 많이 받는다. 이미지는 ‘여우’인데 통 무뚝뚝하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원래가 그런 것을.
아내와 아이들(보영 고3,수영 고2,기현 고1)한테 신경을 못 써줘 늘 미안하다. 그저 마음뿐이다. 그러나 내가 야구감독으로 있는 한 계속 이겨야하고 이기려면 더욱 노력해야 한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이 세상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재박<프로야구 현대유니콘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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