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있고 심오한 예술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즐기게 할 책임이 극장에 있다면, 관객도 ‘창출’해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문화시음회’ 전략의 일환으로 탄생된 ‘정오의 예술무대’가 정동극장의 대표적 브랜드 프로그램으로 3년전부터 자리잡게 되었다.
‘정오의 예술무대’는 직장인들이 점심식사후 차 한잔 마시는 자투리 시간과 공연을 결합시킨 무대다. 차값만 내고 차와 30분간의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공연장 한번 찾지 않던 관객도 ‘정오무대’를 통해서 우리 국악 연극 등 순수공연과 만난 뒤 저녁공연시간대에 정식 공연관객으로 흡인된다는 사실이다.
초기에 이 프로그램이 직장인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얻자 일부에서는 “순수예술을 너무 이벤트화했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심지어 “서구 극장의 품위를 봐라. 점심시간에 공연하는 것도 문제지만 차 마시고 공연 보는 것은 엄숙해야할 극장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짓”이라는 매도도 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극장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모르는 사람들의 잘못된 잣대이며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이들의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귀족들의 살롱문화에서 발전된 오늘날의 유수한 서구극장이 관객 공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실은 시민사회에 이르러서까지 귀족주의적 품격과 전통만을 너무 중시한 결과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극장은 시간적 선택과 공간 이동에 대한 특별한 선택을 하지 않고서는 찾아갈 수 없는 곳이 돼버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돈은 내도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할만큼 바쁘다. 또 심각한 교통체증으로 극장에 찾아가기 힘들다. 이래저래 극장의 순수예술은 시민들과 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TV는 어떤가. 밥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TV를 보고 친구가 찾아와도 TV를 보며 얘기를 나눈다. 따라서 TV가 우리의 생활 한가운데 존재하는 한 그 영향력은 막강하고 무차별적이다.
‘정오무대’가 인기를 끌었던 것도 바로 극장이 TV처럼 시민들의 생활속으로 자연스럽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점심식사후 차 한잔 마실 시간에 예술적 감동을 맛보게 함으로써 우리 극장은 저녁 공연시간대에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할 수 있었다. IMF체제 이전인 작년과 대비해 10%나 많은 유료입장료 판매수입을 올리게 된 것은 이의 증거가 아닐까.
요즘 ‘정오무대’는 ‘이동(移動)정오무대’라는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고 각 직장을 찾아다니며 직장인들과 만난다. 30분간의 짧은 공연이지만 이따금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하는 미래의 고객들과의 만남의 장이다.
삶이 각박하고 메마를수록 극장의 존재가 더욱 만만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위해 이제 극장도 관객을 찾아나서야 한다.
홍사종(정동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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