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해 IMF한파는 우리 호텔산업에도 매섭게 불어닥쳤다. 매출이 줄어도 경비는 함부로 줄일 수 없는 곳이 호텔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오로지 근무 강도와 생산성을 높여나가는 것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버텨온 한해였던 것 같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기는 그리 꺾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터의 소중함이 일깨워졌던 한 해였으며 직원간의 유대도 그 어느때 보다 단단하게 굳어지는 시간이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장점 중의 하나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IMF 시대에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따뜻함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호텔에 장기 투숙중인 대한항공의 외국인 기장들은 월급에서 매달 얼마씩 떼내어 기금을 만들고 그 돈으로 노숙자 및 불우이웃들에게 생활비 교육비 등을 지원해 오고 있다. 어떤 기장은 비행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올 때마다 현지에서 사온 과일이나 물건을 우리에게 내놓고 어떤 기장은 본국에서 옷가지 등을 깨끗이 세탁해 가져오기도 한다.
비행시간이 틀려 서로 만날 수 없는 이들은 우리에게 물건이나 돈을 맡기고 알아서 써달라고 부탁한 지 벌써 여러달이 되었다. 그러면 프런트 직원들은 쉬는 날 서울역 고아원 등을 찾아다니며 이들의 온정을 대신 전달해 주고 있다.
고객들의 선행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 또한 줄어든 월급이지만 전직원이 일정액을 떼어 지난해 수해를 입은 이재민 의연금으로 기탁했다. 우리들 중에도 이재민이 많았는데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이기 바란다고 전직원이 흔쾌히 동의해 가능했던 일이었다. 또한 노동조합원들은 바자를 열어 음식과 물건들을 팔아 그 수익금 전액을 남양주에 있는 지체 장애인들의 생활 공동체인 나눔의 집에 전달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지난 해는 개관이래 영업적인 면에서 가장 어려웠던 한 해였으면서도 불우한 이웃들과 가장 많은 나눔을 가진 한 해이기도 했다. 어려울수록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들. 그 넉넉한 즐거움을 우리는 고객과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
더욱이 지난 해 가을부터는 비즈니스 여행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 우리의 영업목표를 상회하기 시작했다. IMF시대를 맞은지 1년여만에 서서히 한국을 찾는 바이어와 관광객들의 발길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전통적인 비수기인 12월과 1월에도 이어지고 있는 외국인 고객들을 보며 우리나라 경제의 밝은 앞날을 확신한다.
호텔의 문이 1년 3백65일 24시간 열려 있듯이 사람들에게 꿈과 기대가 있는 한 희망의 문도 늘 그렇게 열려 있을 것이다.
박찬희(르네상스서울호텔 홍보실장)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