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선생이 미술품을 수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으나 이번에 그 소장품의 면면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소장품에는 문화재적, 사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조형적으로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걸작들이 많았다.
선생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교양이나 취향에 맞는 문화재를 좋아하고 가까이서 즐기려고 모았다. 이런 소장품들은 문화재에 대한 선생의 애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서화의 경우 자하 신위(紫霞 申緯)의 ‘구학연운(邱壑煙雲)’같은 작품은 매우 귀한 것이다. 자하의 죽도(竹圖)는 많이 보아왔는데 이처럼 큰 폭의 산수도는 처음 보는 작품이다. 그림에 이어진 설명문의 자체(字體)도 예리하고 기백이 넘치고 있어 자하가 맘먹고 그리고 쓴 듯하다.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의 ‘표옹선생서화첩(豹翁先生書畵帖)’은 화가이자 평론가인 표암의 독창적인 구도와 필획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그중 노근란(露根蘭)은 망국의 슬픔을 뿌리채 드러낸 난에 비유한 그림인데 표암은 이를 나름대로 재해석, 변형시켰다.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등이 쓴 시를 묶은 ‘파산수창시첩(坡山酬唱詩帖)’은 당대 선비들의 문향을 전하는 한편 낱낱을 들여다 보면 우리 역사를 보완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소치 허련(小痴 許鍊)의 ‘전가사시(田家四時)’도 반갑다. 추사가 아꼈던 소치는 스승으로부터 관념 산수의 뿌리를 잇고 있으나 이 그림에서는 초가 등 한국의 풍경을 실경으로 묘사했다. 소치의 또다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작품이다.
도자기 가운데도 10∼11세기의 작품인 ‘청자참외모양주전자’는 발랄한 모양과 더불어 초기 청자의 원형을 그대로 담고 있다. 뚜껑도 연잎 모양인데 이처럼 볼록하고 잎 가장자리를 휘어올린 모양은 아주 귀하다.
모두 10개를 선보이는 ‘청자상감국화당초무늬잔’은 오랜 세월을 두고 꾸준히 모은 정성을 전한다. 이런 잔은 보통 한두개씩 발견되는 게 보통인데 이처럼 여러 개를 모아 세트를 갖추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백자양각운학무늬주전자’ ‘분청박지모란잎무늬병’ 등 다수의 도자기도 일반인들에게 훌륭한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밖에 가구중에도 옛 품격과 모양을 온존히 전하고 있는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모두가 선생의 각별한 문화재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흔히 이런 소장품들은 당대를 지나면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민미술관에서 선대의 애정이 깃든 소장품을 한자리에 모아 제대로 관리하고 일반에게 전시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나중에 이런 수작들은 영구히 남아 역사가 되고 후학들에게도 좋은 연구 자료가 된다.
일민 선생의 정신이 깃든 이번 소장품전은 우리나라 또는 세계인이 한국 미술의 또 다른 일면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양모<국립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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