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철학과 논리학을 담당하셨지만 전공보다는 민족학을 자주 강의하셨다. 어느 날인가 우리는 일본말이 서툰 선생에게 우리말로 강의하자고 졸랐고 잠시 우리를 응시하신 선생은 ‘창문을 닫아라. 그리고 노트도 덮어라. 약소민족에는 필기가 필요없다. 모든 것은 머리와 가슴에 새겨 두어라’고 말씀하셨다. 젊은 우리들 가슴 속에 민족혼을 깊이 불어넣으신 것이다.
1943년 일제가 학도병 지원을 강요하자 선생은 “하늘에는 태양이 있고 땅에는 민족의 정의가 있다”며 제자들에게 민족혼을 불어넣으셨다. 이로 인해 일제의 탄압을 받으셨고 제자들이 일제의 군대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더 이상 교단에 설 수 없다며 금강산에 은둔하셨다.
해방이 되자 보성전문에 복직하시어 인촌선생의 건학정신을 바탕으로 민족대학으로의 도약에 심혈을 경주함과 동시에 좌익에 점령되다시피했던 보성전문을 수호하는데 혼신의 투쟁을 전개하셨다. 1945년 12월28일 유엔의 한반도 신탁통치안이 결정되자 선생께서는 교단을 박차고 인촌선생의 반탁노선에 따라 이승만(李承晩)박사와 김구(金九)주석의 반탁진영에 합류하셨고 본인이 위원장으로 있는 반탁전국학생총연맹의 투쟁활동을 지도해 주시기도 하셨다.
선생께서는 말년에도 단군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상고사회와 한글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민족사 찾기와 한글운동을 펴셨다. 또 대종교 총전교로서 민족뿌리찾기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셨다.
이제 마지막 건국지도자이신 한뫼 선생이 가시니 참으로 허전하기 그지 없다. 그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더욱 단합하고 분발하여 민주통일의 과업을 완수할 것을 다짐하면서 추도사로 가름한다.
이철승(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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