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동아마라톤은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라 이제는 국민의 축제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주인이었고 모두가 승자였다. 지붕 없는 박물관, 경주에서 그것을 기쁘게 확인한다.
경주를 감싼 주변의 산정에는 눈이 허옇게 내려 있었지만 레이스가 펼쳐진 들판에는 복사꽃이 희디 희게 이미 봄이 와 있었다.
▼ 아름다운 사람들 ▼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국기광장을 뒤덮은 열기와 함께 대회 아침은 밝았다. 해병 제1사단 군악대와 의장대가 이른 아침부터 출발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기세를 올려주고 있었다.
그들이 내건 플래카드에는 ‘국민과 함께, 해병대와 함께’라고 믿음직스럽게 써 있었다.
‘자립생활, 장애인 홀로서기의 시작입니다.’ 뇌성마비 연구회에서 내건 현수막이 펄럭이고 출발선으로 나서는 현대정공 선수들의 기합소리도 드높았다.
노란 풍선을 들고 출발선을 지키는 선덕여중 자원봉사자들의 웃음소리가 거기 뒤섞였다. 배번 11488을 단 젊은 아내에게 남편이 마사지를 해 주고 있었고 어린 꼬마까지 옆에서 발을 풀었다.
배번 11552, 11578, 11659…. 이들은 시각장애인들이었다. 삼성 맹인 안내견 학교라는 휘장을 등에 붙이고 그들을 돕던 언니 오빠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이런 아름다움이 모여서 70세의 동아마라톤은 젊고 또 젊었다.
며칠전 내린 비로 갈증을 푼 한 논바닥에는 풀이 자라 푸른 빛을 띠고 화랑교육원 옆 밭에서는 거름을 내던 농부가 달려나와 박수를 쳐댄다.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하던 아저씨도 나무 위에서 선수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소년들이 탄 자전거가 선수들을 따라 보도 위를 줄을 이어 달렸다. 경운기에 미나리를 가득 가득싣고 가던 아저씨도 멈춰서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동아마라톤 사진 콘테스트 참가자들은 이번 대회에 또 하나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레이스 전 구간에 퍼져 있는 카메라맨들이 길목마다 지키며 선수들을 향해 셔터를 눌러댔기 때문이다.
12㎞ 지점에서 선두 그룹은 10명으로 압축되었다. 고통의 한계에 스스로를 내던진 선수들의 얼굴이 무아의 표정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다.
대회 참가자 가운데 가장 빠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유영훈(한국전력)이 아쉽게 처지기 시작했고 오성근 장기식 형재영 세 선수는 분황사 앞까지 치열한 각축을 벌였다.
땀으로 뒤덮인 장기식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 뒤로 처졌다.
1시간 50분을 지나며 형재영의 역주가 빛을 발했다. 그의 단독질주였다. 37.5㎞에서 뒤따르는 선수가 멀리 있음을 확인하는 그의 얼굴에는 우승을확신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의지로 가득찬 눈빛이 번득이는 그의 얼굴은 차라리 비장해 보였다.
경기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기쁘다”고 한 우승자 형재영, 그만이 아니었다.
마스터스 대회 참가자들에게서, 무엇엔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저토록 순수하다는 것을 곳곳에서 확인하는 하루였다.
계명대 김제경 선수, 한국체대 정남균 선수 등 대학생들의 역주도 높이 살 만했다. 한국 마라톤의 앞날은 그렇게 밝았다.
▼ 희망을 담은 레이스 ▼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또 있었다. 경주 시민들의 따듯한 마음이 전해져 오는 협조와 질서의식은 ‘문화의 세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라는 문화엑스포 광장의 커다란 표어가 실감으로 다가오게 하는 것이었다.
민족이 그토록 어두웠던 시절, 1931년이었다. 그때 태어난 동아마라톤이 오늘 이토록 젊어져서 경주를 달렸다.
나라 잃은 젊은이에게 꿈과 뜻을 품게 하자는 어른들의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 동아마라톤이 아니었던가.
70이란 무엇인가. 많은 것에 지혜롭고 너그러워지는 나이. 어린 아이처럼 평화로워지는 나이, 그 무엇에 대해서도 용서가 가능해지는 나이, 그것이 70이 아닌가.
오늘 동아마라톤은 70이어서 젊고 70이어서 더 아름다웠다.
한수산(세종대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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