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비어 있으면 울림이 있다. 나는 그 울림이 좋다. 내가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던 때, 어느 평일 오후쯤에 그곳 덕수궁 현대미술관 분관에서 느꼈던 한가함과 여유로움은 그 텅빈 울림 속에 있었던 것 같다.
▼ 빈 공간엔 울림이 있다
어른이 되면 마음속의 살림이 많이 늘어난다. 공간이 채워지면 울리지 않듯 재고 계산하고 쓸데없이 바쁜 마음은 감정의 울림을 가지지 못한다. 살면서 쌓아 놓은 묵은 살림들이다.
지켜야 할 약속, 오늘 처리해야 할 급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 어제 있었던 작은 다툼, 어른답지 못했던 행동, 아침 신문에서 읽은 정치가들의 불가사의한 행태와 그것이 신문의 앞면을 차지하는 것에 대한 분노같은 것들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익숙해져간다.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익숙한 일상은 편안한 행복을 보장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돌이킬 수 없이 둔해지고 무거워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름다움에 공명(共鳴)하지 못하게 된다.
아름다움이 울리지 못하는 마음이 지배하는 사회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동강을 지구상에서 없앨 계획을 짠다. 밤의 탐욕과 담배연기 자욱한 카지노, 네온사인과 레이저빔 속에 상가와 음식점으로 가득 찬 거리를 더많이 제주도에 만들어내려 한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지만 끊임없는 기갈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너무 빨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함께 섞여 달려가고 있다. 아직 대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만을 다행스러워하며.
▼ 일상에 얽매인 우리들
그러나 변화란 그저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가장 훌륭한 변화의 방법은 변화 자체를 선도하는 것이다. 선도하지 못할 때 우리는 늘 추종자에 불과하다. 추종자는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작은 마음의 공간 안에 다른 사람이 만든 가구를 사들여 그 속에서 자신을 잊고 산다. 마음의 공간 어디에도 자신의 모습은 없다.
한 집단에 의해 공유되는 공통의 원칙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정신적 공간을 꽉 메우고 있는 대량생산된 가구같은 것이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을 혁명이라고 정의한다. 변화를 창조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혁명가가 되지 않으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레닌은 피투성이의 무서운 혁명가이고 코코 샤넬은 냄새가 좋은 부드러운 혁명가이다.
좋은 혁명가가 되어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공간을 많이 비워 놓아야 한다. 애초에 잡동사니들을 들여놓지 말거나 살면서 쌓아 놓은 묵은 허섭쓰레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연연해하는 사람들은 결코 미래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들이 주도하는 개혁은 늘 말뿐이고 실제는 언제나 기존의 원칙이 확장되는 곳을 향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미래는 성공한 과거일 뿐이다. 겨울이 되어도 잎과 열매를 달고 있는 나무처럼 그들은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다.
▼ 마음의 더께를 버리자
봄이 되어 나무에 꽃이 피어나 곱다. 꽃은 지난 겨울 모든 것을 버린 나무가 새로 만들어 낸 미래이다. 작년 여름의 그 뜨겁던 햇볕을 담은 열매와 푸르고 무성한 잎을 버리지 않고 올 봄에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는 나무는 없다. 아직 꽃도 새 잎도 피우지 않고 서있는 석조전 앞의 화살나무를 보며 그 벌거벗음 속에서 가구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는 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랑한 울림을 듣는다. 새롭게 채워 나가야 할 비어 있는 우주를 본다.
구본형(한국 IBM 경영혁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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