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홍사종/공연장에도 적용되는 경제논리

  • 입력 1999년 5월 21일 19시 28분


사실의 뚜껑을 열면 진실은 항상 엉뚱한 곳에 있을 때가 많다. 겉에 나열된 것과 속내용이 다른 경우를 말한다. 요즘 문화계에 분분한 ‘공공 공연장이 돈벌이를 위해 자체 기획공연에 몰두하는 바람에 민간단체의 대관이 어렵다. 공연예술계가 위기다’라는 얘기도 그렇다.

이 말대로라면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문예회관과 같은 공공 공연장 등은 문화창달이라는 공적인 이익과 가치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잘못된 일을 저지르는 셈이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공연단체에 발표무대를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돈벌이되는 공연만 찾아 자체기획공연으로 소화한다면 순수예술진흥이라는 본래적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그와 정반대다.

이들 공연장이 공간 임대 중심으로 운영하던 시절, 개인예술가 혹은 공연 단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 중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 ‘세종문화회관 소강당’ ‘문예회관’은 상당부분 민간기획단체가 주최한 독주회 혹은 학교 무용단체들의 차지였다. 이들의 공연은 자발적 수요로 창출된 관객이 아닌 일가 친지 전공자 제자들을 모아 놓고 홀로 만족을 꾀하는 ‘자위공연’에 가깝다. 이런 공연에는 출연자의 신분을 과시하듯 겹겹이 쌓이는 화환과 예외없이 들러리 평론가가 등장해 나팔수 역할을 한다. ‘그의 피아니시모니는 환상의 극치였다’ 등 관람평이 전문지에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 모든 것들은 진정한 의미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수요 공급의 원리 밖에서 혼자 생산해내고 스스로 즐기는 왜곡된 확대 재생산 구조를 연출한다. 외국 같으면 학교 강당이나 구민회관 정도의 지역 공연장을 이용해도 될 공연 수요가 유명 공공 공연장으로만 몰리는 것은 이름값에 대한 프리미엄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대학 강사 자리를 위한 경력란에 채워질 유명 공연장의 이름값이 엉뚱한 수요를 폭발시켰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공연의 양적 팽창에는 기여할지 모르지만 질의 고양이나 공연산업의 경쟁력 향상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뜻에서 공공 공연장의 자체기획기능 활성화는 일부 순수공연장이 본래 기능을 외면하고 돈벌이 우선으로 영화 혹은 대중공연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것을 빼놓고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카네기홀이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것도 바로 극장이 자체 기획기능을 활성화 했기 때문이다.

공공 공연장이 자체 프로그램을 앞세우기 때문에 공연단체가 갈 데가 없다는 논리는 사실이긴 해도 진실은 아니다. 공연계에 몰아닥친 구조조정 바람으로 생긴 일시적 몸살로 보는 측면이 옳다. 극장의 역할이 증대되면 민간 전문인력도 공연장으로 흡수될 것이고 과도기가 지나면 우수한 예술가와 단체가 무대에 설 기회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일과성 일회성의 실적주의 공연보다는 레퍼토리 시스템을 통한 관객 저변 확대는 물론 공연장의 관광자원화도 조속히 진전될 것이다.

공연시장도 이제 경제논리의 밖에 서 있을 수만은 없다. 재래시장식 유통구조로는 세계문화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인적 물적 자원을 갖춘 공연장이 유명 백화점처럼 우수하고 질좋은 상품을 직접 골라 소비자에게 서비스하고 파는 근대적 유통체계로 거듭나야 한다. 물론 순수공연예술의 대중적 확산이라는 공공의 명제를 전제로 했을 때의 일이다.

홍사종(정동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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