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전희천/창조는 지성과 감성의 산물

  • 입력 1999년 7월 8일 19시 17분


한 입사 지원자에게 “도둑질을 해본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없는데요.”

“어머니의 돈지갑에서 어릴 때 동전을 꺼낸 일도 없단 말입니까?”

다른 지원자에겐 “실연한 적이 없나요”라고 물었다. 입사 지원자는 아주 당당하게 “제 사전엔 실연이란 낱말은 아예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지원자에게 “머리에 무스는 왜 발랐죠”라고 물었다.

“좀 튀어 보이려고요.”

“겉모습이 튄다고 속까지 튀나요?”

“….”

첫번째 지원자는 아마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 같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함의(含意)가 있다. 먼저 ‘도둑질’이란 말에 대해 그가 고착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확장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긴박한 순간과 상황에서 뜻밖의 질문에 순발력과 여유를 보이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다음은 그의 심리형성의 근간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도둑질은 분명히 옳은 행위는 아니지만 어릴 때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엄마의 돈을 슬쩍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관념과 사탕을 사먹고 싶은 애타는 욕구와의 틈새에서 아이들은 불안과 갈망의 괴로운 시소게임을 한다. 이 미묘한 갈등심리가 성장 과정에서 창조력의 한 뿌리를 만들 수 있다.

창조란 갈등의 소산이다. 도벽이 있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사창(私娼)을 즐겨찾은 니체는 초인 사상을, 근친상간을 한 앙드레 지드는 ‘좁은 문’을 창조했다. 물론 이들의 창조력이 온전히 이같은 부도덕성에서 나온 것이란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런 프라이버시가 창조과정의 한 동인(動因)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두번째 응시생의 답변은 마치 사랑을 승리의 지표쯤으로 생각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실연이란 인간의 삶에서 가장 뼈저린 경험이다. 그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인간과 세상을 깊게 넓게 새롭게 배운다. 그는 천국과 연옥과 지옥을 다녀온 사람이다. 실연을 다른 어떤 실패와 좌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실패의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은 인간과 세상을 안다.

남자로서 치욕인 궁형(宮刑)을 당한 사마천의 ‘사기열전’, 베아트리체를 사무치게 연모한 단테의 서사시 ‘신곡’, 귀부인 조세핀에 대해 애증콤플렉스를 가진 나폴레옹의 거대한 야망이 그와 같은 아픔과 무관할까.

세번째 응시생은 광고회사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모르는 사람이다. 광고인은 전략가이고 연출자이지 결코 연기자는 아니다. 연출자는 고도의 지성과 감성을 가져야 한다. ‘튄다’는 특성은 이와 같은 자질과 능력의 바탕에서 바로 어떤 ‘한 순간의 상황’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광고마케팅이 다루는 시장이란 다름 아닌 인간 세상을 말한다. 인간의 본성과 행태, 인간의 의식과 가치관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이 광고회사 사람들의 일이다. 광고 전문가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이 인간과 세상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깊은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근년에 많은 우수한 젊은이들이 광고가 재미있다며 광고회사를 지망한다. 그런 탓인지 여러 대학에 광고학과가 신설됐고 학생들 사이에 광고동아리의 활동도 활발하다. 광고는 고통스러운 창조작업이다. 결코 이론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창의성은 학습이 아니라 지성과 감성의 총화적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전희천<오리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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