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룡의 환상세계]만화 주인공은 그 시대의 초상

  • 입력 1999년 7월 11일 21시 40분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있는 만화를 보면, 만화의 주인공들이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독고 탁’이란 주인공으로 유명한 이상무씨의 만화가 인기를 끌었던 70년대까지, 만화의 주인공들은 정의에 불타는 영웅이거나, 밝고 순수하고 명랑한 소년들이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었던 고도 경제성장기에 어울리는 주인공들이었다.

이현세씨의 ‘공포의 외인구단이’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80년대 만화의 막이 올랐다. 이 때부터 만화의 주인공들은 불우한 성장과정과 반항적인 성격을 지닌 비엘리트들로 바뀌었다. 경제성장의 결과가 빈부의 격차를 발생시킨 탓일 것이다. 비엘리트 주인공들이 엘리트 사회에 도전하고 이기는 과정은 주류에서 소외된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그리고 90년대. 만화의 주인공들이 또다시 변하고 있다. 무협만화인 ‘열혈강호(양재현)’의 주인공 한비광. 그가 잘하는 무술은 빠르게 도망치는 기술인 ‘경공술’이다. 그에게는 무림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상투적인 야망이 없다. 싸움으로부터 도망치기 바쁘다.

‘힙합(김수용)’의 주인공들은 백댄서를 꿈꾸는 청소년들이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무대의 주역인 가수보다, 무대의 뒤편에서 묵묵히 춤을 추는 백댄서가 더욱 멋있다고 느낀다. ‘자장면(허영만)’의 주인공은 일류 호텔의 주방장이 아니라 자기 동네에서 자장면을 가장 맛있게 만드는 요리사가 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있다.

‘오디션(천계영)’의 두 여주인공은 악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꽤나 이기적이고 비겁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90년대 들어 가치관과 삶의 모습들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상적인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자신에 맞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대라는 것을, 인기 만화의 주인공들이 보여주고 있다.

김지룡〈신세대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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