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룡의 환상세계]『익숙해좋다』리메이크 전성시대

  • 입력 1999년 7월 18일 19시 45분


샘플링기법으로 외국곡을 따서 쓰거나 아예 외국곡을 리메이크한 가요곡이 많아졌다.

유승준의 ‘슬픈 침묵’은 영국 록밴드 래어버드의 ‘Sympathy’의 일부 소절을 반복적으로 사용했고, 그룹 ‘GOD’의 ‘어머님께’는 투팩의 ‘Life Goes On’을, ‘관찰’은 야즈의 ‘Don’t Go’를 인용했다.조관우는 비지스의 ‘Too Much Heaven’을 리메이크했고, 클론의 신곡인 ‘사랑과 영혼’은 프랑스 영화 ‘나자리노’의 주제가를 리메이크한 곡이다.

이런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만만치 않다. 무단으로 외국곡을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과, 가수나 제작자들이 고통스런 창작 대신 샘플링과 리메이크로 손쉽게 인기곡을 만들려 한다는 것이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 침해 행위는 비난의 차원이 아니라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할 부분이다. 그러나 창작이란 반드시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이미 대중음악은 데자뷰(deja vu,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본 것처럼 느끼는 착각)현상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TV가 보급된 지 40여년. 대중음악은 너무나 방대한 창작물을 쏟아내 왔다. 고통스런 창작과정을 통해 이제까지 없었던 오리지널 곡을 만들어내도 어디선가 한 번 들어본 노래라는 느낌이 든다.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넣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오리지널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생경한 노래에 거부감을 일으키고, 알기쉬운 노래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샘플링과 리메이크의 장점은 익숙함을 통해 접근하기 쉽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대중음악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헐리우드 영화인 ‘매트릭스’나 일본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기존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B급 영화의 장면들을 대량으로 인용했다.

이제 대중문화는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을 적절히 인용하는 ‘조합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김지룡〈신세대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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