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윤제/大宇처리 시장에 맡겨라

  • 입력 1999년 7월 21일 18시 47분


그동안 대우 문제에 대한 접근이 한국 경제정책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국내외 관측자들은 이를 주시해왔다. 그러나 며칠전 발표된 대책으로 보아서는 정부가 앞으로 재벌부실에 대해 어떤 인식과 틀을 가지고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요행을 바라고 결정을 미루며 근본적으로는 종래와 크게 다름없는 접근 방식을 단지 조금 새로운 모양새를 갖추어 적용시키려는 것 이상으로 해석하기는 힘들다.

★거액지원 국민만 부담

우선 대우가 왜 여기까지 이르게 됐는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대우는 방만한 확장경영과 과잉설비로 이미 부실이 상당히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 이후 오히려 차입증대에 의한 무모한 사업확대를 지속한 시대착오적인 경영행태를 보였다.

정부는 기업구조조정에서 80년대 초 산업합리화 개념과 비슷한 빅딜이라는 틀을 들고나왔다. 결국 대재벌들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정부와의 딜을 잘하면 실질적인 구조조정 없이도 독점지위의 확보와 금융지원 등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희망을 갖게 한 측면을 부정하기 어렵다.

종래와 같이 국내시장보호와 금융지원으로 기업과잉설비와 부실을 풀어가기에 한국 경제와 기업의 규모는 이미 너무 커졌다. 자본시장 역시 정부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수 있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크게 축소돼 시장을 설득하고 만족시킬 수 없는 기업경영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게 됐다.

대우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도 바로 이런 상황변화에 대한 인식과 앞으로 한국 경제질서의 새로운 정착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설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접근방식은 이런 면에서 볼때 미진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실패한 경영인이라면 그에게 정상화를 맡겨서도 안되며 그가 맡아서 정상화를 할 수 있다면 그를 정상화 후 경영에서 물러나게 해서도 안될 것이다. 정부와 채권단은 이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거나 개인에 대한 배려보다 기업경영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보다 공정하고 분명한 질서를 세우는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4조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신규대출 지원은 대우 계열기업의 엄격한 자산 부채실사와 더불어 장래 사업성에 대한 검토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회생 가능성이 큰 계열기업의 고용조정, 보유자산매각, 경영혁신 등 뚜렷한 성과와 연계돼 집중적으로 지원돼야 한다.

요행과 실현가능성이 뚜렷하지 않은 약속을 믿고 가령 중소기업 1만개를 살리고도 남을 수 있는 엄청난 액수를 일시에 대우그룹에 지원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민부담을 가중시킬 위험에 비해 시장에 대한 설득력은 부족하다.

★채권단이 앞장서야

정부는 그동안 누차 주장한 시장주도의 슬로건에도 불구하고 대우의 주채권자인 투신사 등에 대해 무슨 명목으로 신규대출과 기존대출의 연장을 요구하는지 분명치 않다. 은행 대출이 부실화하면 은행의 대주주인 정부가 손실을 책임진다고 하나 이도 궁극적으로 국민의 세금이며 더구나 투신사의 대출은 투자자들의 돈이다.

만약 이 대출이 부실화했을 때 누가 책임을 져 줄 것인가? 정부는 감당할 수 없는 굴레를 더 이상 스스로에게 씌워서는 안된다. 또 해외 채권자도 채권단에 포함시켜 추가자금 지원의 실효성을 높이고 손실분담 원칙을 보다 공정히 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볼 때 지금부터라도 대우채권단 주도로 계열기업의 엄격한 자산실사와 더불어 필요한 경우 계열기업부채의 출자전환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전제로 추가적인 자금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른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대우나 여타 재벌이 세계에 쌓아놓은 상표명이나 시장은 한국 경제가 지켜나가야 할 커다란 자산이다. 동시에 한국 대기업들이 가장 유능하고 합리적인 경영진에 의해 경영되고 또한 부실기업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질서를 세워나가야 한다. 이는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나 또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대우 문제의 해법이 국민경제에 가져올 충격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되나 시장의 힘을 거슬러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다. 시장의 충격흡수능력이나 적응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 대우그룹이나 정부는 시장의 요구와 반응에 순응하는 대응을 할 때만이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다.

조윤제(서강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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