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새 청년문화를 기다리며

  • 입력 1999년 8월 13일 19시 10분


60, 70년대 제작된 우리 영화를 TV같은 데서 다시 볼 기회가 간혹 있다. 그때마다 왠지 웃음을 참아내기 어렵다. 그 중 결정적으로 폭소를 자아내는 장면은 남자배우들의 장발 모습이다. 잘 빗지도 않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린 당시 젊은이들의 헤어스타일은 지금 보면 답답하고 어색하기 그지 없다.

70년대 젊은이들은 장발과 함께 청바지와 통기타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청년문화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도 그 때였다.

▽학자들은 70년대 청년문화를 ‘자유를 향한 도전’으로, 80년대 청년문화에 대해서는 ‘민주화를 갈구하는 저항과 투쟁’으로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70년대 젊은이는 장발과 청바지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 질서에 대항했고 80년대 젊은이들은 암울한 현실을 강력한 투쟁성으로 정면돌파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런 청년문화가 사회 발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시대가 바뀌고 21세기를 맞는다. 지난 90년대를 되돌아보면서 아쉬운 점의 하나는 청년문화의 실종이다. 90년대에도 신세대문화라는 게 있긴 하지만 저급한 소비문화에 불과할 뿐 진정한 의미의 청년문화로 볼 수 없다. 21세기를 창의성과 다양성의 시대라고 전망할 때 젊은이의 저항적 에너지, 문화적 감수성은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현 신세대문화의 물꼬를 보다 생산적이고 건강한 쪽으로 돌려놓는 계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어른 시각에서 과거 청년문화로의 회귀를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살아 움직이는 문화의 특성상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만화 가요 패션 등 여러 장르에 걸친 대규모 청소년문화축제가 13∼1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문화관광부와 시민문화단체 지원으로 열리고 있다. 한여름 휴가로 텅빈 도심에서 그들만의 축제를 열겠다는 아이디어가 우선 신선하다. 이번 축제가 흔히 있는 소모적 행사가 돼서는 안된다. 새 형태의 청년문화를 모색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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