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구호지원팀 관계자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 이웃의 고통을 모른 체할 수 없다.”
한국이 세계화를 외치는 가운데 각대학에 국제관계 대학원이 경쟁적으로 설립되고 전쟁이나 다름없는 ‘영어배우기’ 열풍이 몰아친지도 벌써 5년. 그러나 이곳으로 달려온 한국 젊은이들은 정말 손꼽을 정도다. 우리에게 ‘세계화’는 있어도 ‘세계인’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교역상대’는 눈에 띄어도 ‘이웃’은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지구촌 곳곳에서 달려온 수천명의 구조단 가운데 한국인은 5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서 800여명의 젊은이를 잃은 터키인의 섭섭함을 달래기에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최근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터키돕기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면서 현지언론은 ‘뜻밖’에 한국으로부터 날아드는 지원에 놀라기도 한다. ‘칸카르데쉬(피를 나눈 형제국)에 감사를.’ 터키 현지언론은 한국의 터키돕기운동을 이렇게 보도했다.
그러나 이 참사의 현장에서 한국인 자원봉사자를 찾아보기 힘든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의 회사원이 터키에 복구지원을 가겠다고 2주간 휴가를 내는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외국과 마찬가지로 시민단체나 비정부기구가 활성화되었다면 이런 문제는 보다 손쉽게 해결될지도 모른다.
그러자면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을 보는 우리의 시각부터 긍정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쩌면 세계화 이전에 성숙한 시민사회를 가질 수 있느냐는 문제일 것이다.
김승련<사회부>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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