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구석, 어긋난 데도 부풀린 데도 없는 한국 공직사회의 적나라한 얼굴이 아닌가. 혈연 학연 지연이 보직 배정과 승진 발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새삼스럽게 한 중견공무원이 양심선언하듯 적어 놓은 것을 읽으면서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실감하게 된다. 건국 이래 50년 이상 행정 시스템 개선에 숱한 돈과 사람을 투입해오고, 이제 더러는 선진행정 무역대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을 자랑스럽게 외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면서도 이런 후진적인 ‘속병’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행정 공무는 합리와 능률 효율 속에 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목표이며, 그 집행은 국민이라는 불특정 다수인에 대해 공평 획일 강행의 성격을 띠게 된다. 그렇다면 행정의 머리 손과 발이 되는 공무원에 대한 인사에서부터 ‘연줄’이 앞서는 ‘사선(私先)’의 풍토에서 공정하고 능률적인 행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무원 전체의 사기를 북돋우고, 그들의 도덕성 창의성 봉사정신 청렴성을 나라의 에너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연줄 인사를 차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저자는 공무원 사회의 또다른 크고 작은 병폐들도 들추고 있다. 이를테면 국회가 열릴 때마다 장관 차관의 답변을 거들기 위해 실국장급은 물론 하위직까지 모두 의사당에 몰려가 행정공백이 생기는 것, 보고서 하나를 윗분이 보기 좋게 꾸미기 위해 숱한 복사지를 소모하는 등 인적 물적 낭비가 심한 것,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의 내용도 모르면서 밤 12시까지 서성거리다 다음날 새벽에 나오는 이상한 공무원들의 생존습성 등이 지적된다.
한마디로 관료의 패러다임이 변하지 않는한 한국의 21세기 미래는 결코 낙관할 수 없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관료의 타성이나 ‘연줄 편승’같은 문제들은 나라와 시대를 초월한 숙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숙제를 잘 해결해 나간 나라가 바로 선진국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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