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암울했던 여름▼
이번 한가위에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보름달처럼 둥근 그리움을 안고 고향으로 향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좀 작은 선물이라도 사들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처럼 우리 모두 밖에서 겉돌고 서성댔던 마음을 이제 제자리로 데려와 가을 속에 깊이 익혀야 하리라.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서늘한 눈빛으로 하늘을 우러러 좀 더 거짓없이 살겠다는 약속을 해야겠다. 들녘의 볏단처럼 겸허히 눈길을 모으고 더욱 성실하고 인내하는 사랑의 삶을 살겠다는 약속을 해야겠다.
“국제통화기금(IMF) 시대를 겪으면서 오히려 빈부의 격차가 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아요.”
“학교에선 교실이 무너지고 가정에선 일치와 평화가 깨지고 있어요.”
“해외에서 듣게 되는 고국의 소식은 왜 그리 어두운 것뿐인가요.”
“사기 거짓말에 대한 것이 너무 많아 정말 부끄러워요.”
이런 말들을 하도 여러번 되풀이해 들으니 마음이 착잡하고 우울해져 기도하기 힘들 때가 많다. 세상 어디에도 사랑이 없고 평화가 없는 것 같아 허무하고 답답할 땐 어떤 말을 찾아 기도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멍해지기도 한다.
무분별한 학살의 현장 동티모르에서 잠시 해외로 피신해 있는 카를로스 벨로 주교가 미사도중 북받치는 슬픔을 어쩌지 못해 눈물 흘리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그 마음을 헤아리니 나도 눈물이 난다.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신부 수녀들도 여러명 피살됐다는 소식이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국민을 위해 오랜 세월 목숨 바쳐 ‘평화의 길’에 투신한 그들처럼 몸소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때만 우리는 감히 이웃을, 나라를 진정 사랑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만은 빼놓고 다른 그 누가 해주길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자신은 방관자 입장에서 늘 편한 것을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너무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남만 탓하고 있지는 않나▼
이 가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뉘우침의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려보자. 입만 열면 남을 비난하고 원망했던 시간들, 무관심 무기력 무감동으로 일상생활을 소홀히 했던 시간들, 분수에 맞지 않는 허영과 오만으로 눈이 멀었던 시간들, 무례하고 거친 말로 가족 친지에게 상처를 주었던 시간들을 뉘우치며, 이제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가다듬기로 하자. 나날의 삶에서 마주치는 작고 평범한 것들에서부터 ‘평화의 도구’가 되고 ‘평화의 길’이 될 채비를 하며 은혜로운 가을을 맞자. 거짓평화가 아닌 참평화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안일한 태도를 버리고 많이 아파하고 상처받을 준비도 돼 있어야 하리라. 평화란 끊임없는회심과용서,사랑과 인내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세기를 초월해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평화의 사도 성 프란체스코. 그의 기도문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평화의 기도’를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마음으로 외워 보며 나도 작지만 쓸모있는 ‘평화의 도구’되리라 새롭게 다짐해 본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어두움에 빛을/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우리는 줌으로써 받고/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해인<시인·부산 성베네딕도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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