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양김시대'▼
20세기 후반기의 오랜 세월 양김(김대중 김영삼)은 ‘희망’이었다. 민주화로 이어주는 ‘희망의 다리’였다. 그러나 그들은 독재에 맞설 때는 힘을 합치다가도 권력을 잡을 기회가 주어지면 어김없이 등을 돌렸다. 80년 봄이 그랬고 87년 겨울에도 그랬다. YS(김영삼)의 말대로라면 ‘태어나서는 안될’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탄생에는 양김의 반목이 크게 기여한 셈이다.
그럼에도 양김은 여전히 ‘희망’이고 ‘대안(代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동서로 분열된 희망이고 대안이었으며, 그로부터 심화된 맹목적이고 몰가치적 지역감정은 한 세기를 마감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치사회를 질곡속에 가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정치사는 아직 양김시대에 머물러 있다. 청와대나 여권 인사들은 다시 발끈할지도 모르겠다. ‘YS시대는이미 갔으며 실패한 대통령 YS와 현직 대통령 DJ(김대중)를 어떻게 한 반열에 세우느냐’고.
일리있는 반박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가 여전히 지역주의에 근거한 1인 보스정치, 사당(私黨)정치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또 앞으로도 그것을 근본적으로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역사는 오늘의 시대를‘양김시대’로 뭉뚱그릴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김대통령이 국민통합의 정치를 주창하는 것은 마땅하다. 김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국민통합의 기틀이나마 세우는데 성공한다면 역사는 분명 ‘김대중 시대’를 독립적인 장에 기록할 것이다.
전망은 어떤가. 불행하게도 밝지 않은 편이다. 신당을 창당하고 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로 바꾸는 등 정치개혁을 한다고 하지만 정치개혁의 근본이라할 정당 민주화는 한 걸음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인 당총재의‘제왕적 리더십’아래 집권여당은 여전히‘소인(小人)들의 식탁’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자민련과의 합당이든 신당이든 절차의 선후나 방법론은 아무래도 좋다고 한다면 어떤 새로움이나 정당정치를 통한 새시대의 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설령 내각제로 개헌이 된다고 해도 지금의 비민주적 리더십, 구시대적 정당체제로는 희망은커녕 오히려 ‘지역영주 분할체제’를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이 만드는 '희망'▼
이제 새 시대의 ‘희망의 다리’가 될 새로운 지도자의 모습이 떠올라야할 때다.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반이상 남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뛸 일이 아니다. 김대통령이 철저한 민주적 경쟁을 통해 다음 세대 지도자를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레임덕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권의 차세대지도자그룹이 경쟁과 검증을 통해 후보를 좁혀나가고 야당 후보와 차별성을 보여나갈 때 정치의 희망이 있고 그것은 곧 선택권을 가진 국민의‘신바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실은 어떤가. 내년 총선후에는 어떤 식으로든 여권내 차기주자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하지만 야당에서는 여전히 DJP(김대중 김종필)가 임기말 내각제 개헌을 통해 권력연장을 꾀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이것이 엄연한 우리의 정치현실이다. 그렇다고 마냥 두고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새시대 ‘희망의 다리’는 유권자인 국민이 찾고 만들어내야 한다. 국민의 희망보다는 개인의 권력과 정파의 이해나 지역주의에 매달리는 정치인, ‘부패한 철새나 해바라기’들은 애초부터 그 싹을 잘라야 한다. 그 첫마당은 내년 4월 총선이다. 희망만이 힘이 된다.
전진우<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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