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風'과 '文'의 메시지

  • 입력 1999년 12월 1일 19시 19분


일본 한자(漢字)능력검정협회. 대학이나 기업의 의뢰를 받아 학생 취업희망자 종업원의 한자능력을 평가해주는 기관이다.

연말마다 이 협회는 설문조사를 통해 그 해의 일본사회를 상징하는 ‘올해의 한자’ 하나를 뽑는다. 그 한 글자가 언론의 어떤 송년특집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고베(神戶)대지진이 터졌던 95년에는 ‘진(震)’, O―157 식중독으로 시끄러웠던 96년에는 ‘식(食)’이 뽑혔다. 기업과 금융기관이 연쇄도산한 97년에는 ‘도(倒)’가 선정됐다. 어떤 독한 부인이 마을 잔치에서 카레라이스에 독극물을 넣어 수십명의 사상자를 냈고 관료부패사건이 잇따랐던 작년에는 ‘독(毒)’이었다.

한국사회라면 어떨까. 작년에는 ‘풍(風)’이었을 것이다. 북풍(北風) 세풍(稅風) 총풍(銃風)이 사회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직전 정권에서 저질러진 북풍 세풍 총풍 의혹에 대한 새 정권의 단죄시도였다. 그러나 상당수 국민에게는 단죄시도 역시 또 다른 바람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잘못을 시정해 정의를 바로세우겠다던 새 정부의 취지와는 달리 정치싸움의 양상을 띠며 전개됐다는 얘기다. ‘정의 바로세우기’는 얼마간의 성과를 냈으나 그 기억은 이미 풍화(風化)되고 있다.

올해의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한자는 무엇인가. ‘문(文)’일 것이다.

기자가 만들어 여권 실력자에게 보낸 ‘언론문건’, 이른바 사직동팀이 ‘옷 로비’ 내사결과라며 만들었다는 보고문건 등등이 정권을 연타하고 있다. 정권의 도덕성과 기강과 짜임새가 얼마나 허망했던가를 알몸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타격을 받은 것은 정권뿐만이 아니다. 문건을 만든 사람, 받은 사람, 전달한 사람, 폭로한 사람이 죄다 상처를 입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신뢰체계가 멍들었다.

‘풍’과 ‘문’은 집권 첫 해와 2년째의 변화를 시사한다. ‘풍’은 집권 첫 해를 맞은 정권의 의욕 같은 것을 풍겼다. 다만 그 의욕이 거칠게 구사됐다. 과거 정권을 이어받은 야당 또한 거칠게 반항했다. 그 결과가 정쟁이며 기억의 풍화다.

‘문’은 집권 2년째의 이완과 타락을 드러낸다. 정보기관 최고책임자였던 사람이 정보기관의 내부문서를 들고 나왔다. 대통령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서를 피의자 남편인 과거 상사에게 빼돌렸다. 가장 엄정해야 할 공문서를 하찮은 사문서처럼 멋대로 취급했다. 누군가는 그 문서를 변조했다. 거기에 기자와 야당 정치인과 기업 로비스트가 끼어들어 거래 폭로 협박 배신의 저급한 드라마를 펼쳤다. ‘풍’은 바람처럼 휘몰아쳤다가 바람처럼 잊혀지고 있다. ‘문’은 남아 공직과 사회의 나상(裸像)을 계속 증언하고 있다.

1999년 12월. 1000년대의 마지막 달이다. 세계는 새 밀레니엄을 꿈꾸고 기획한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의 세기말은 음습한 ‘문’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자면 모든 의혹을 낱낱이 밝히고 당사자들을 가차없이 처벌해야 한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다.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권의 기강을 다잡고 도덕적 긴장을 회복해야 한다. 권력이란 조금만 방심해도 사람을 취하게 하고 중독시키는 법이다. 한때는 업무에 충직하고 도덕적으로 긴장했을 사람들의 일탈행동이 그 증거다. 정권에도, 민족에도 시간이 많지 않다. ‘새 천년…’을 외친다고 새 천년이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낙연<국제부장>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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