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여전히 정보부?

  • 입력 1999년 12월 21일 18시 52분


만화에 나오는 정보원의 얼굴에 검은색 안경을 씌운 것은 60년대 야당 당보(黨報)부터 였다. 군출신 정보부장이나 요원들이 선글라스를 쓰고 멋을 부리는데서 상징한 것이리라. 그리고 ‘정보정치’ ‘공작정치’라는 세상에 없는 말을 이 땅에 보통명사로 자리잡게 한 것도 야당이었다. 중앙정보부라는 데서 국회를 조종하고 심지어 야당총재도 골라서 뽑는 공작을 했으니까.

▼ 정략정치 한복판에 ▼

야당은 끊임없이 정보정치 공작정치를 집어치우라고 외쳤다. 그 대열의 선두에는 늘 오늘의 김대중대통령이나 김영삼전대통령이 서 있었다. 그러나 YS가 대통령에 오른 뒤 국가안전기획부의 실속은 ‘정보부’ 그대로인 채였다. 문민정부라 해서 새 안기부로 거듭나게 한다는 다짐과 함께 직원모집 광고를 내면서 유전공학 국제경제 전문가를 우대, 국가경쟁력에 이바지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속임수였을 뿐이다. 여전히 정치파트를 담당하는 간부와 요원들이 힘을 쓰고 좌지우지했다. 정권 교체기에는 판문점에서 북한의 총질이라도 유도해 대선 판세를 뒤집어보자는 비도(非道)한 공작을 꾸민 총풍(銃風), 북측의 편지를 빌미 삼아서라도 야당을 눌러보자는 북풍(北風)이 모두 거기서 연출되었다. 그 때문에 안기부장 차장 실장이 줄줄이 잡혀들어갔다.

김대통령은 평생을 정보 공작정치에 시달리고 ‘남산 사람들’에 의해 구금당하고 목숨을 잃은 뻔도 했다. 그러나 새정부들어 국정원으로 인해 빚어지는 고문 도청 미행 소란때문에 욕을 먹고 있다.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국회529호사건, 언론문건 사건, 정치자금 실언(失言)등등 그동안 국정원의 도움이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몇갑절의 적자를 치르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득보다는 실(失)이 더 많을 것이라는데 있다. 대북정보나 국가안전보장을 다루는 부문이 아닌, 야당과 정치정보를 수집하는 ‘정보부’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국정원으로 운영되는 한 숱한 도덕성 비판과 정치적 후환(後患)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되는 명백한 이유가 몇가지 있다.

첫째, 대통령이 취임시에 선서하는 준법(遵法)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국정원장이나 간부 직원은 누구도 정치에 관여할 수 없게 국정원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니 국정원장을 만나서 보고받는 야당총재 얘기라거나 국내정치 문제는 상당부분 위법이다. 국정원이 여론조사를 하고 대야(對野)문제를 분석하며 선거판세를 읽는 행위가 모두 위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책임자는 하루종일 법을 어기는 날도 있을 것이다.

▼ 법에 맞제 운영해야 ▼

둘째, 정치를 안정시키고 합리화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정보부’가 정치정보를 수집하고 대야 조처를 궁리하는 한 여당은 허수아비일 수밖에 없다. 야당은 야당대로 불안하고 무서워서라도 한없이 소리를 지를 것이다. 작은 문제도 고함을 치고, 사소한 거리도 부각시켜야 야당의원이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느낄 것은 빤하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정치가 유독 정쟁이 심하고 소란스러운 것은 상당 부분 ‘정보부’ 탓이다.

셋째,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어느 선진국에 야당정보를 빼내고 정치에 관여하는 ‘정보부’가 있으며, 쳐다볼만한 주요 교역국가 어디에 정치정보를 수집하며 힘을 발휘하는 ‘정보부’가 존재하는가. 재벌의 부채비율을 선진국수준에 맞추라고, 세계 어느나라 재벌이 한국식의 오너십이냐고 다그치는 만큼 그런 정권보위조직도 새 정부 스스로 없애는 것이 개혁의 실천이다.

넷째, 정권교체기나 그 이후의 후환을 부르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지난번 대선때 총풍 북풍을 음모한 사람들도, 또 당선가능성이 엿보이는 DJ진영에 정보를 댄 사람들도 다 ‘정보부’사람들이다. 그들은 권력의 강을 건너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부림 칠 것이다. 정보가 야당에 새 나간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라 국정원 안의 ‘정보부’ 혁파를 통해 원천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보부’를 해체하고 국정원을 법에 맞게 운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김충식/논설위원> 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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