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이낙연/2025년의 세계

  • 입력 1999년 12월 29일 19시 58분


밀레니엄이 바뀌고 있다. 당연히 미래예측이 범람한다. 모든 예측을 믿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몇 가지는 꼼꼼히 살펴볼 만하다. 미국 국방장관 산하의 임시기구 ‘21세기 국가안보위원회’의 보고서 ‘다가오는 신세계(New World Coming)’도 그렇다. 146쪽의 이 보고서는 2025년까지의 세계를 다각도로 전망했다.

우선 세계정세. 세계화의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리더일 것이다. 특히 군사적 우위는 흔들리지 않는다. 중국의 대두가 미국에는 최대도전이다. 잘하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누를 수도 있다. 대유럽의 경제규모가 미국보다 조금 더 커지고 달러와 유로의 양대 통화가 세계경제를 지배할 것이다. 러시아는 충분한 민주주의로 발전하지도 못하고 인구도 줄어 유라시아의 병자(病者)가 될 것이다. 인도 인구가 중국보다 많아져 세계최다가 될 것이다.

희망과 불안이 가장 극적으로 교차하는 지역은 동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다. 낙관적 전망은 이렇다. 동아시아는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지역이 될지도 모른다. 중국은 우주개발에서 미국과 경쟁하고 세계적 하이테크 기업들을 가질 것이다. 각종 첨단기술의 상업적 군사적 이용을 추구할 것이다. 일본은 초소형 전자기계식 시스템(MEMS) 인공지능 로봇 컴퓨터 등의 개발과 생산에서 세계를 리드할 것이다. 한국과 대만은 세계적 수준의 정보통신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그 일부는 미국과 일본에 도전할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낙관은 대부분 가정(假定)에서 출발한 것이다. 중국은 동아시아의 미래에 영향을 주게 돼 있지만 중국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은 현상유지가 불가능하다. 최상의 조건에서도 일본의 GDP는 세계의 8%에서 4.5%로 떨어질 것이다. 대전쟁이 일어난다면 동북아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 지역은 강대국 사이의 영토분쟁이 존재하는 유일한 곳이다. 한중일 3각구도의 세력균형이 불안정해지거나 잘못 관리될 우려도 있다. 대변화는 한반도에서 시작될 공산이 가장 크다. 그러나 한반도가 어떻게 변할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가 대변화의 기로, 번영과 충돌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우리끼리 치고받느라 이 역사적 전환기를 많이 허송했다. 바깥 세상은 꿈틀거리는데, 그리고 우리를 주시하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에만 너무 골몰했다. 4월 총선이 예정된 내년에는 사태가 호전되기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더 높다.

정부와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선거가 아무리 급해도, 정쟁이 아무리 소용돌이쳐도 그렇다. 정부와 정치권의 어디에선가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내일의 관점에서 오늘을 역산(逆算)해보고 나라 안팎을 다져야 한다. 경제 노사 복지 환경 대북관계는 말할 나위도 없다. 4강 외교도 몇 차례의 정상회담 성공에 안주할 때가 아니다.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는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에 시련을 안겨줄 소지가 있다. 2002년 월드컵과 그 이전의 일본천황 방한은 한일관계를 한층 성숙시킬 수도, 좌절시킬 수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불안요인을 안고 있다. 이런 모든 것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세상이 뒤숭숭하다. 그럴수록 내일을 명석하게 내다보고 차분하게 준비하는 정부 당국자와 정치인을 보고 싶다.

이낙연〈국제부장〉naky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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