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권순활/일본은 아직 멀었다

  • 입력 2000년 1월 21일 02시 36분


최근 일본에서 우파 지식인 니시오 간지(西尾幹二)가 쓴 ‘국민의 역사’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작년 10월말 출간돼 연말까지 65만부 이상 팔렸다. 2개월간의 판매량만으로도 지난해 일본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 5위였다.

이 책은 일본역사를 철저히 정당화했다. “일본은 식민지 통치기간 중 대만보다 한반도에서 훨씬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아시아를 철권통치했으나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그렇다. 한일합방도 ‘무방비의 한반도를 사수하기 위한 정책의 결과로 일본의 피할 수 없는 의무’였다고 정당화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침략도 ‘근대의식에 관한 일본인의 최초, 최대의 자기표현’으로 미화했다.

최근 몇 년간 일본에는 이른바 ‘자학(自虐)사관’ 극복을 주장하며 일본의 침략사를 정당화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국민의 역사’처럼 큰 인기를 끈 책도 적지 않다. 1998년 여름에는 “대동아전쟁이야말로 인류의 가장 아름답고 잔혹하고 숭고한 전쟁이었다”고 예찬한 우익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よしのり)의 장편만화 ‘전쟁론’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붐을 일으켰다. 당시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전쟁론 붐’으로 상징되는 보수우경화 분위기를 지적하며 “반세기 전의 비극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위험이 저류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다”고 경계했다.

자국의 역사를 가급적 좋게 해석하려는 심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미화에도 한계가 있다. 특히 가해의 역사를 지닌 국가가 피해의 상처를 기억하는 타국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반성하기는커녕 그것을 오히려 정당화하고 미화한다면 진정한 과거청산과 우호관계구축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익서적이 범람하고 인기를 끄는 일본사회의 기류가 왠지 불안하다.

권순활<도쿄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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