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됨됨이 어려울때 드러나▼
먼 산이나 큰 산만 그런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동네의 동산이나 안산도 다를 것이 없다. 강이나 내처럼 열려 있는 자세가 아닌 탓에 풍수로 밥을 먹는 사람들은 다르겠지만 어느 사람들에게는 심산이고 야산이고 때없이 본새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산이기 때문이다.
산이 제대로 보이는 철은 요즘과 같은 한겨울뿐이다. 산마루의 낮고 높음, 산등성이의 숙고 솟음, 산골짜기의 얕고 깊음, 산기슭의 좁고 넓음 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나뭇잎이 죄다 지고 난 다음의 일이다. 벼랑의 암석, 계곡의 수석, 산지의 임상(林相)이 잘 보이고 전인미답의 비경이 엿보이는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제아무리 단골로 입에 오르내리던 명승지라도 녹음이 한 번 우거지면 산수의 아늑함과 풍광의 명미함을 그럴 듯하게 느끼기란 수월치가 않은 법이다. 그러다 보니 산에 묻혀 있는 옛것을 찾고 캐는 사람들도 산이 녹음으로 뒤덮이는 계절에는 활동을 참는다. 일테면 고을의 지리에 훤한 토박이 향토사 연구가들조차도 산이 열리는 한겨울에야 현장 답사에 나설 수가 있는 것이다. 옛적의 성터와 절터와 집터를 뒤져가면서 자로 재고 사진을 찍고 탁본을 뜨고 하는 것도 다 이 어름의 일인 것이다. 허물어진 성벽과 쓰러진 탑, 넘어진 비석, 깨어진 기왓장, 벼랑바위에 새긴 불상, 도굴된 무덤 등도 산이 실제로 ‘설상가상’이라는 자연적인 통과의례를 치른 뒤에나 현장도 답사하고 연구 자료도 얻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낙엽이 져서 시야가 열리지 않으면 국보적인 문화재가 사방에 널려 있다고 해도 수풀과 덤불에 가려서 눈에 잘 뜨이지가 않는 탓이다.
산은 산이라 하고, 그러면 하고많은 사람이 부대끼며 사는 터수에 사람은 언제 잘 보이는 것일까. 무릇 한다 하게 사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된 사람과 덜 된 사람을 가려 보는 일은 누구나 떡 먹듯이 되는 일이 아니다. 비록 쌍둥이라고 해도 인격까지 닮는 것이 아닐진대 하물며 이 세상에 오게 된 인연도 각각이고 자라난 바탕도 각각인 뭇사람의 경우일 것인가.
그런 가운데에 사람은 함께 노름을 해보면 알 수 있다는 이도 있고, 함께 술을 마셔보면 알 수 있다는 이도 있다. 같이 여행을 해보면 알 수 있다는 이도 있고, 같이 동업을 해보면 알 수 있다는 이도 있다. 어쩌면 그럴는지도 모른다. 또 그럴 만한 근거가 있어서 나온 말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해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을 나는 더 믿는다. 위기 관리 능력이야말로 곧 그 사람의 됨됨이이며 진면목이 드러나는 경우라고 나름껏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언제가 어려운 일을 당하는 때일까. 아마도 선거 때일 것이다. 뭇사람 앞에서 자기에 대한 평가를 자청하는 일은 초등학교 교실에서 줄반장에 출마하는 어린이 외엔 한결같이 큰 용기가 필요할 테니까. 하다못해 몇 집 없는 두메의 이장 선거에서도 이렇다 하고 보여줄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여간해서 점수를 따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위기의 정치인 어떻게 하려나▼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자기를 드러내는 일에 인색하다. 국회에서 여봐란 듯이 호령하고 내로라 하고 떠드는 것은 자기의 어딘가를 감추려는 으름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요즈음 생각지도 않은 겨울을 만나 당황하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시민단체가 작성하여 공개한 공천 반대자 명단이 곧 고엽제인 셈이지만 세상이 다 아는 자업자득이라 호소 무처일 것이다. 이제 그들이 보여줘야 할 것은 위기 관리의 능력이 아니라 태도이다. 그 태도에 따라서 더러는 낙엽이 진 가지에 잎눈이 움트고 더러는 낙엽이 진 가지부터 삭정이가 될 터이다. 산도 많고 인물도 많은 나라이니 설상가상쯤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이문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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