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첫해를 맞으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모든 역량을 집중할’ 국정지표의 첫머리에 국민화합 구현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 신년메시지에는 이미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그 대신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이 남긴 말 “우리가 남이가(남이냐)” 가 불멸의 명언처럼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총선을 두달 앞두고 각 정당이 결국 ‘남이가’론으로 무장한 ‘텃밭 석권전략’을 가다듬고 있다니 말이다. 너나없이 지역주의 타파를 입에 올리지만 내 논에 물대기를 위한 잔머리 굴리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역감정이 빚어내는 국력 분산과 소모는 따져보면 엄청나다. 제 뜻으로 어느 지역을 골라 태어난 것도 아닌데 직장에서, 술집에서, 심지어 고향이 다른 부부간에까지 지역의 장벽 앞에선 등을 돌리는 ‘아,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런 현실 속에선 진정한 선진국도, 통일국가도 꿈꾸지 말아야할지 모른다.
▷이런 지역감정을 치유하려면 지역감정을 부채질하는 무리를 도태시키는 것이 유효한 방법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단체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총선후보 낙선운동을 벌이는 데 대해 양식 있는 유권자들은 공감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새삼스러운 조장발언 이전에 지역감정은 이미 작동하고 있으며, 시민단체활동이 그것을 충분히 무력화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데 이 지역감정의 뿌리를 키운 최대의 ‘영양분’은 바로 한국통신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지역편중 인사다. 그런 점에서 정부 및 각급 공공기관에서 지역색 인사를 자행하거나 부추기는 자들이야말로 지역감정의 ‘진짜’ 조장자들이다. 과거정권 때의 경우도 물론 그렇다.
<배인준 논설위원> injo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