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에 대한 배려에 초점 ▼
서울 강남과 전국에 걸쳐 치과병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예치과 원장 박인출(朴仁出)씨는 의료계로부터 ‘장사꾼’이란 비판을 듣는다. 그도 그럴 것은 병원들이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요즘에도 예치과에는 손님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른 치과에 비해 진료비가 싼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은 그가 의사이기보다 장사꾼적 수완에 더 많이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그가 의사로서의 본분을 포기하고 어떤 장사를 했기에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릴까. 그는 지금까지 치과병원에 대한 일반인들의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버렸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흰색과 회색 중심의 내부 인테리어도 안락한 가정집 응접실 분위기로 바꿨다. 고정관념대로라면 우리네 환자는 의사의 전문용어를 못 알아들어도 질문할 엄두조차 못낸다. 무시당할까 두려워서다. 그러나 그의 치과에서는 환자가 묻기 전에 먼저 말을 건네고 상세하게 답해주며 따라온 가족에게까지 친절한 서비스와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는 시대가 새로운 병원을 요구한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의료는 치료기술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배려에 초점을 맞춘 예치과의 행동표준을 만들어놓고 동료 의사들과 공유하며, 나아가 병원 마케팅까지 펼친다. 앞서 편지의 주인공과 같은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고객의 입장에서 환자를 대하는 섬세한 서비스가 예치과의 마케팅, 즉 ‘장사’의 핵심인 셈이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예치과가 고객으로부터 사랑받는 병원이 된 원인도 바로 이 병원의 철저한 장사꾼 정신에 기인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 장사꾼이란 수식을 공공직업 분야에서 열심히 일해 성공한 사람들을 폄훼하는 말로 즐겨 사용한다. 박인출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 교육의 진정한 소비자인 학생을 중심에 놓고 서비스 혁신을 이룩해 학교를 명문의 반열에 올려놓은 교육기관의 수장을 장사꾼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아무개는 교육자가 아니고 장사꾼이란 비아냥이다. 어디 교육계뿐이랴. 공공문화 단체에서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고품격의 서비스와 함께 팔아 자발적 수요를 창출해내면 “문화를 너무 장사화한다”고 비난한다.
▼ 공공부문도 '장사 정신' 배워야 ▼
그러나 나는 세상의 모든 분야가 장사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성공으로부터도 멀어진다는 생각이다. 기업이 장사를 잘하면 기업의 가치와 더불어 나라 경제도 윤택해지는 것처럼 공공분야의 종사자들도 장사를 잘하면 자기분야의 발전은 물론 의료복지 교육발전 문화창달이라는 공적 이익과 가치창조도 더불어 부합되기 때문이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인류의 교사 소크라테스, 비극작가 소포클레스를 탄생시킨 고대 그리스인들도 장사꾼이다. 수백년간 지중해의 통상을 석권하며 유럽문화 발전에 위대한 공헌을 한 베네치아인도 철저한 장사꾼이다. 중세의 암흑을 깨고 르네상스의 찬란한 빛을 쏘아 올리며 번영했던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국가가 장사를 통해 그 번영을 이루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고 있다.
장사는 끊임없이 수요자라는 다른 대상과의 접촉을 요구받는다. 접촉은 정보라는 형태의 자극을 생산하고, 자극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일에 일조한다. 앞으로 공공적 사업분야에도 박인출씨 같은 장사꾼이 지금보다 더욱 많이 득세하는 세상을 기대해본다. 장사꾼이 득세해야 나라도 산다.
홍사종 <정동극장장·숙명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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