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의 세상스크린]'주식대박'은 행운

  • 입력 2000년 4월 9일 20시 21분


“돈 많이 벌어서 좋겠어요.”

“100억원을 넘게 버셨다면서요?”

“제 사업에 돈 좀 투자해주세요.”

작년 가을 영화배우 박중훈이 코스닥으로 돈방석에 앉았다는 뉴스 이후로 거의 매일 듣다시피하는 말입니다. 이제는 상대방의 표정과 입모양만 봐도 어떤 얘기를 하겠구나를 알 정도로 제게는 사실 지겨운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상당수 많은 모임 끝부분에 제 주식얘기가 거론되고 더우기 그 때마다 건방져 보이지 않으려고 매번 웃으면서 겸손한 자세로 대답하는 일은 차라리 괴롭기까지 한 것이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경제나 주식에 문외한일 것 같은 박중훈이도 돈 벌었는데, 나라고 못벌소냐”라는 생각은 다소 과장된 언론의 보도와 함께 ‘개미’ 투자자들에게 화제가 되고, 용기를 주고, 기름을 붓기에 충분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부러움도 받고 또 질시도 받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주식에 투자했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친구 도우려 한것 뿐▼

수년전 (지금은 유수의 벤처기업이 되어버린) 새롬기술은 고교와 대학 때 사귄 친구들이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만든 회사였습니다. 제 친구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돕자는 차원에서 “큰 낭패는 보지않겠지”라고 믿으며 용기를 내 돈을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 IMF(국제통화기금)사태라는 천재지변이 일어나 새롬기술은 흑자부도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저는 투자액을 당연히 날렸다고 생각하며, 간간히 그 친구들과 위로주를 마시며 쓰린 가슴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벤처 붐과 함께 제게 커다란 행운이 돌아온 것이죠. 그리고 얼마 전, 이를 현금화한 것이 박중훈과 코스닥에 얽힌 실체의 전부인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었으면 수백억원이 되어 있었을 텐데, 당시 몇 배 오르니까 가슴이 출렁거려 “이게 왠일이냐”며 낼름 팔아버렸습니다. 그래도 보도 내용처럼 큰 돈은 아니지만 꽤 거액을 가져올 수 있었죠. 저에게 천운을 주신 세상에 진심으로 감사올립니다. 엄청난 복으로 알고 고마운 줄 알고 살겠습니다.

▼"주식전문가 말도 안돼"▼

하나 안타까운 것은 주위의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으로 낭패를 보고 있다고 하더군요. 빚을 갚기 위해 주식하신 분, 전 재산을 주식에 투자하신 분, 심지어 주식 때문에 원래의 직업조차도 버리신 분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최근 주식 투자바람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일정 부분 동기를 준 사람으로서 도의적으로 미안하고 송구스러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여행은 떠나야 여행이고, 결혼은 식장에 들어가야 결혼이고, 돈은 손에 쥐어야 내 돈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주식과 기업 분석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들도 앞날을 잘 모르는데 개미 투자자들에게 소위 ‘주식 대박’이라는 것은 복권과도 같은 확률이 아닐까요? 전문가도 아닌 제가 마치 주식 전문가처럼 포장되어버린 요즘 “어떻게 하면 주식에서 돈을 벌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어울리지 않게 많이 받습니다. 그 때 저의 대답은 항상 같습니다.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영화 배우라서요.”

▼필자약력▼

△89년 중앙대 영화과 졸업

△92년 뉴욕대 교육연극학 석사

△85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후 ‘투캅스’ ‘게임의 법칙’ ‘인정 사정 볼 것 없다’ 등 영화 30여편에 주연

△94년 대종상 남우주연상, 91년 제32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2000년 프랑스 도빌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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