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과거로 돌립시다"▼
1941년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으로 시작돼 4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말미암아 무려 166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사이의 역사적 대결구도 아래 무고하게 희생된 그들의 시체를 딛고 서서 종전 10년 만에 두 나라는 화해를 다짐했던 것이다.
두 달뒤인 6월25일에 우리는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이한다. 37개월 동안 계속됐던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남북을 합친 우리 민족의 인적 손실은 무려 520만명 규모에 이른다. 그때 남북 인구를 모두 합쳐 약 3000만명으로 추산한다면 인구 6명에 1명꼴로 손실된 셈이다. 참으로 엄청난 인적 손실이 아닐 수 없는데, 특히 비전투요원의 인적 손실이 세계전쟁의 역사에서 유례 없을 만큼 컸다는 점에 한국전쟁의 비참성이 있다.
인적 손실과 함께 기억돼야 할 점은 10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말해지는 이산가족의 발생이다. 부모형제와 친척친지들이 남과 북으로 나뉜 채, 매우 예외적인 경우를 빼놓고는, 생사조차 모르며 살다가 감아지지 않는 눈을 감은 이들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 인터넷 시대의 개막으로 전 세계가 즉각적인 의사소통의 망 속에 연결된 정보혁명의 21세기에 엽서 한 장, 전화 한 통 주고받을 수 없어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국전쟁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죄없는 사람들이었다. 국제적 냉전과 민족내부적 이데올로기 대결이 빚어낸 비극의 산물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남과 북은 그 전쟁이 휴전으로 봉합된 때로부터 47년 가까이 지나도록 화해의 길을 찾지 못하고 여전히 군사대결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가 탈이데올로기 탈냉전과 교류협력의 새로운 역사 단계로 들어선 때로부터 10년이 지나도록 한반도는 부끄럽게도 냉전의 마지막 섬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국전쟁 발발 50주년의 달에 한반도 분단 55년의 역사에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뜻깊다. 이제는 민족적 차원에서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유산을 청산하는 가운데 평화와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할 때, 마치 몬터규 집안과 카풀렛 집안이 뒤늦게나마 원한을 씻고 화해의 악수를 나눴듯이, 남과 북 역시 역사적 정상회담을 시발로 ‘한국전쟁을 뛰어넘어’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길에 들어서야 할 것이다.
▼남북 모두 양보하고 인내하길▼
마침 오늘 판문점에서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접촉이 시작된다. 앞으로 우여곡절이 적지 않을 터인데, 남과 북 모두 소절(小節)에 얽매이지 말고 판을 크게 읽으며 상호 양보와 인내로써 진전시켜가기 바란다. 무엇보다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지고, 그들 말고도 분단과 전쟁의 희생자가 되어 자신의 의사에 반해남과 북에 주저앉게 된 채 귀향을 학수고대하는 동포들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가족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올해가 독일통일 10주년의 해임을 상기할 때 남과 북은 더욱 분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는 국민적 합의를 넓히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레 열리는 여야 영수회담이 좋은 합의를 이뤄내기를 기대한다.
김학준<본사편집논설고문·인천대총장> h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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