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분야에서 일급 번역 '작가'로 꼽히는 인물은 양억관(44) 김난주씨(41)로 이들은 자기 이름을 걸고 일본어 전업 번역가로 나선 1세대다. 몇 년새 출간된 굵직한 일본문학 번역서 대부분이 이들의 손길을 거쳤다. 무라카미 류, 하나무라 만게츠 등은 양씨가,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마루야마 겐지 등은 김씨가 사이좋게 '독점'해 왔다.
경력 8년차답게 대중적인 인지도도 높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동거인 이란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번역작가 부부라고 숨기지도 않았지만 떠들고 다니지도 않았다"(양)는 설명. 두 사람의 이력을 봐도 특이하다. 같은 대학(경희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나란히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문학을 배웠다. 일문학 번역작가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조건이다.
하지만 번역 스타일은 딴판이다. 양씨가 정확한 의미 전달에 무게를 둔다면, 김씨는 원작의 문체 살기기에 힘쓴다. 양씨의 번역문이 선이 굵다면, 김씨 번역문은 꼼꼼하다. 이런 성향차 때문에 청탁이 들어오는 책도 다르다. 주로 내용이 난해하고 사회성 짙은 작품은 양씨, 원작 분위기를 세심하게 살려야하는 작품은 김씨 몫이다.
잡안에서도 '한지붕 두 작업'이다. 일은 각자, 마감이 임박했다고 품앗이하는 일도 없다. 업무상 공유하는 것이라고는 원고료 통장과 이메일 뿐. "함께 일해서 좋은 것이라면 남들에게 전화해서 물어볼 필요가 없는 점 정도?" (김)
하지만 '번역'에 대한 입장은 한결 같다. "번역한지 모르게 스스르 읽히는 게 최고"라는 것. "번역은 한없이 원서에 다가가는 행위예요." (김). "원작이 좋은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그대로 살리는 것이 최선이죠." (양)
부부의 번역량은 '월간지'라는 별명을 얻었던 안정효씨보다 많다. 대략 두 달에 세 권가량. 문학말고도 다양한 인문서에도 손대는 양씨가 양으로는 다소 많다. 양씨는 "전업 번역가인 가장의 책임"이라고 했다. 벌이를 묻자 "둘이 버니 먹고 살만 하다 "(김)고만 했다.
일본어 번역의 가장 큰 애로는 '일본어는 영어나 불어보다 쉽다'는 선입견. 한자 어휘나 어순이 비슷하다고 붕어빵 찍듯 일본책을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본식 외래어나 희한한 조어가 나타나면 뜻을 몰라 애먹을 때가 많다." (양) "마루야마 겐지 작품은 문장 자체가 어려워서 의미를 간파하는데 꽤 힘들다." (김) 특히 '키친' 같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가볍게 읽히지만 번역은 어렵다고 했다. 특유의 리듬감을 살리고 복잡하게 얽힌 심층언어를 우리말로 옮기기위해 머리를 쥐어뜯었다고.
놀이 삼아 일을 하는 두 사람 각자 앞에는 7∼8권의 일본책이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내년쯤 부부는 100권씩의 번역서를 채울 듯 싶다. 김씨는 요즘 청소년 은어가 가득한 일본소설 번역을 위해 우리 청소년의 언어생활을 취재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부부의 이름이 번역서의 보증수표가 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