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조영남/알고 보면 미술도 볼만해요

나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이면서 자칭 타칭 영화광이자 미술 애호가다. 음악 영화 미술이 다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지만 나는 지금 미술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좀 까다롭다는 걸 얘기하려는 것이다. 우선 이것들의 호응도에 관해서 얘기해보자.

▼공짜로 보라해도 오질 않으니▼

음악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음악을 엄청 좋아한다. 내가 출연하는 ‘열린음악회’ 야외촬영을 나가면 3만∼5만명이 모이는 것은 보통이다. 그 마을이 텅 비고 식당문이 다 닫힐 정도다. 레코드 음반을 잘만 만들면 100만장의 대박을 터뜨리는 건 문제도 아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따로 얘기할 필요가 없다. 요즘은 국내제작 영화도 관람객 수 수십만명을 쉽게 넘긴다. 물론 국내영화 ‘산책’ 이나 외국영화 ‘인사이더’ 같은 기막힌 영화가 관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경우가 간혹 있긴 하지만 그저 말없이 총이나 탕탕 쏴대고 해괴한 몸짓으로 공중에 붕붕 날아다니는 우스꽝스러운 영화에도 사람들은 꽉꽉 들어찬다. 생각해 보라. 수십억원의 돈을 들이고 수년간 낑낑대며 만든 영화를 단돈 6000원만 내면 푹신한 의자에 파묻혀 팝콘을 먹으며 구경할 수 있으니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이렇듯 노래는 노래를 들어본 사람에 의해, 영화는 영화를 본 사람들에 의해 금방금방 좋은 노래, 덜 좋은 노래 그리고 좋은 영화 덜 좋은 영화로 구분된다. 노래나 영화는 좀 괜찮다 싶으면 벌써 소문으로 속속 번져나간다. 영화 전문가들은 시사회를 보면서 아예 등급표시인 별을 딱딱 매겨버린다.

음악이나 영화는 관객의 눈을 속일 수가 없다. 대중의 평가를 피할 도리가 없다. 이제 미술, 아니 그림 이야기를 해보자. 미술은 노래나 영화와는 기본 구조부터 다르다. 웬만한 미술가가 전시회에서 입장료를 받겠다면 생난리다. 미술은 사실상 연극이나 무용보다도 관객을 못 끌어들인다.

그림 전시회 오프닝에 모처럼 가보면 민망스러워 더 이상 서성거릴 수 없을 때가 허다하다. 그림 구경온 사람의 수가 너무 적어 전시장이 썰렁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다 평생 음악, 영화 그리고 현대미술을 한꺼번에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일상적인 차이점을 눈여겨볼 수 있었다. 왜 미술에는 관객이 몰려들질 않고 공짜로 와서 봐 달라고 해도 와주질 않는가. 물론 현대미술을 노래나 영화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라는 것도 인정하면서 하는 얘기다.

우선 현대미술은 노래나 영화와 달리 전반적으로 애매모호하게 보여지기가 십상이다. 더구나 구상미술보다 추상쪽으로 갈수록 어려워진다. 현대미술을 보면 우선 ‘이게 뭐지’ 하는 의문부터 들게 된다. 그렇다고 옆사람한테 ‘이게 뭘 의미하는 겁니까’하고 물어보면 자신의 무식이 탄로날까봐 그냥 맥없이 바라보다 나오게 된다. 어떤 전시장엔 거의 쓰레기나 넝마같은 것들이 널려 있어서 예술감상은커녕 ‘저런 건 전시가 끝나면 어떻게 처리될까’, 아니면 ‘저런 걸 미술이라고 만든 사람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살까’하는 생각부터 들게 된다. 그렇다. 현대미술은 애매모호하면서도 매우 까다롭다.

▼이론과 철학 먼저 알아야▼

그럼 현대 미술엔 음악이나 영화처럼 좋고 나쁨의 구별이 전혀 없을까. 아니다. 현대미술에도 좋고 나쁨의 구별이 엄연히 있다. 단지 보통사람들은 그걸 구별하기가 힘들게 되어있다는 것뿐이다. 소위 현대미술은 컨템퍼러리일수록 그걸 이해하는 데에는 반드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게 노래나 영화와 다른 점이다.

쉽게 말해 현대미술은 보석감정 같은 거다. 공부를 해야 알 수 있다. 고도의 감정기술을 사전에 터득하지 않으면 현미경을 100대나 가지고 있어도 판별이 불가능한 거다. 게다가 이론과 철학까지도 요구하기 때문에 미술은 어떤 학술분야에서도 왕왕 제일 윗자리에 놓여지는 거다.

어쩌다 나도 이토록 까다로운 현대미술에 간여하게 됐다. 지금 부산에서 전시회를 열고 10월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현대미술축제(FIAC)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내게 미술은 노래나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는 ‘품목’이다. 현대미술이 재미있다는 걸 소문내기 위해 이런 식으로 엄살을 부려봤다.

조영남(가수·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