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로 시작한 대학생활에 이어 대학에서 법학을 가르쳤고 회사원을 거쳐 사업가로 잘 나가다 부도로 실직에까지 이른 조대영씨(61)의 경우가 그렇다. 조씨의 인생은 늘 불안하고 고단한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조씨가 이런 역경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이 쉰이 넘어 시작한 유도와 57세에 시작한 마라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남 함안의 가난한 농가에서 10남매의 넷째로 태어난 조씨. 고등학교(마산상고)까지는 그럭저럭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형들이 대학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학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집에 눌러 앉아 농사를 거들며 세월과 씨름하던 조씨는 고교 졸업 뒤 4년만인 64년 동아대 법대에 입학했다. 단숨에 석사 과정까지 마치고 71년 박사 과정에 들어간 뒤에는 모교에서 후배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며 교수에의 꿈을 키울 만큼 공부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늘 어려운 집안 사정이 문제였다. 결국 조씨는 학업을 중단한 채 회사원으로 변신할 수밖에 없었고 그 회사에서 상무까지 올랐다. 내친김에 80년대초에는 의류를 생산하는 회사를 창업, 사업가의 길로 나서게 됐다.
하루 매출이 1억원에 이를 정도로 잘 나가던 ‘사장님’ 조씨가 젊은 사람도 힘든 유도를 시작한 것은 51세이던 90년. 시내버스에서 소매치기들이 한 여자 승객의 가방을 훔치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길로 동네 유도관에 등록했고 출장을 가더라도 저녁에는 반드시 올라와 연습하는 열정으로 1년만에 유단자가 됐다. 그 뒤 사업에 쫓기며 처음처럼 도장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유도를 통해 모든 일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내년에 5단을 목표로 지금도 유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57세에 시작한 마라톤은 조씨에게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것.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가 닥치면서 조씨의 잘 나가던 사업은 한순간에 부도를 맞아 무너졌고 이 충격에 조씨는 최고 혈압이 180까지 올라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뇨 증세까지 나타나 혈당치가 380까지 올라가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그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 마라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운동장 한바퀴 돌기도 힘들어했던 조씨는 끈질기게 하루 5시간씩 마라톤에 열중했고 이제는 동네에서 ‘마라톤 할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유명인이 됐다. 지난해 동아마라톤에서 처음 42.195km 풀코스 완주(3시간56분)에 도전했던 조씨는 올 동아마라톤에서는 3시간19분59라는 엄청난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덕분에 조씨는 혈압이 90-130으로 떨어졌고 당뇨병은 언제 앓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정상을 되찾았다.
부도의 여파가 워낙 커 여전히 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씨는 그러나 “운동으로 건강을 회복하며 자신감을 되찾은 게 무엇보다 기쁘다”며 “건강만 있으면 무엇인들 못하겠느냐”고 말했다.
<김상호기자>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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