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영화의 대부’ ‘팝 시네마의 제왕’으로 불리며 최근 저서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 푼도 잃지 않았는가’가 국내에 번역 출판된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로저 코먼(74)이 전주국제영화제에 맞춰 방한했다. 29일 ‘로저 코먼의 밤’에서는 그가 직접 고른 자신의 연출작 ‘환각특급’ ‘흡혈식물 대소동’ ‘기관총 엄마’ 등 세 편이 상영됐다. 로저 코먼은 “세 편 중 ‘흡혈식물 대소동’은 이틀만에 촬영한 흑백 코믹 호러영화로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쇼로 공연되거나, 워너 브러더스 영화사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할리우드 B급 영화시장을 선도해온 감독 겸 제작자답지 않게 정중한 노신사의 풍모를 지닌 그는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의 책 제목은 사실과 좀 다르다. 내가 만든 영화는 300여편이고 이 중 280여편에서 수익을 남겼다”고 말했다.
20세기폭스 영화사에서 문서배달사원으로 출발해 1953년부터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로저 코먼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성공적인 독립영화 제작자로 불린다. 그는 고전이 된 ‘괴물 게떼의 공격’ ‘공포의 구멍가게’ 등 싸구려 장르로 취급받던 SF나 호러 장르에서 300여편의 영화를 극도로 저렴한 비용과 편 당 1, 2주가 채 안되는 시간에 만들어냈다.
심지어 ‘갈가마귀’를 만든 뒤에는 세트를 부수는 것이 아까워 시나리오 작업이 채 끝나지도 않은 ‘공포’의 제작에 곧바로 착수했을 정도다. ‘싼 영화’를 속성으로 만든 건 돈이 별로 없어서였다고 밝히는 그는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기본 아이디어와 캐릭터가 나쁘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두 가지에 집중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지금 할리우드는 ‘코먼 사관학교’ 졸업생들이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무명이었던 프랜시스 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잭 니콜슨, 제임스 카메론 등 유명 배우와 감독들을 발굴해왔다. 그는 “1950∼1970년대에 이미 톱 클래스에 오른 배우, 감독들보다 막 영화나 연극을 시작한 사람들을 썼는데 이들이 나중에 유명해진 것일 뿐”이라고만 말했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그의 ‘선구안’은 명성이 높다. 요즘 젊은 감독들 중 주목하는 감독에 대해 묻자 그는 단연 “쿠엔틴 타란티노”를 꼽았다. 그가 매우 창의적이고 실험정신이 있기때문이라는 것.요즘도 해마다 10편 가량의 영화를 만든다는 그는 최근 ‘수어사이드 클럽’ 등 세 편의 영화 제작을 마쳤다. 함께 방한한 딸과 함께 산악영화인 ‘테이크 투 더 리미트’를 조만간 디지털 영화로 제작할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은 디지털 개화기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DVD가 비디오를 대체하는 추세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나의 관심사다.”
‘투자의 효율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그에게 만약 1억 달러가 생긴다면 어떻게 쓸까?
“음,우선 5000만 달러짜리 영화를 한 편 만들겠다. 그러나 특수효과에 과도하게 돈을 쓰고 싶진 않다. 나머지 5000만 달러로는 100만∼1000만 달러짜리 다양한 예산의 실험적인 영화를 여러 편 만들어 보고 싶다.”
<전주〓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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