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에서 11대째 어부생활을 하던 부친께서 81년 별다른 이유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어요. ‘왜 그랬을까’하고 나름대로 이유를 추적하다가 미군 폭격장이 생긴 이후 한 동네 240가구에서 무려 32명이 자살한 사실을 알고 주민들의 피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전위원장은 “그러나 당시는 군사독재시절이라 반상회에서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위원장은 88년 6월 서울 김포공항 일대 주민들이 항공기 이착륙에 따른 소음공해에 항의하는 농성 현장을 찾아가 피해실태와 투쟁방법 등을 조사한 뒤 대책위를 구성했다. 그는 88년 12월부터 89년 3월까지 해상사격 목표인 농섬과 육상사격장을 점거하고 미공군 시설을 부수는 등 격렬한 항의시위를 주도하다 89년 6월 구속돼 8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출감한 뒤에도 자비를 들여 폭격 소음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는 등 투쟁을 계속했지만 미군 폭격은 계속됐고 정부는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실의에 빠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며 “빚도 수천만원이나 졌다”고 말했다.
전위원장은 “미군을 상대로 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지만 끝까지 투쟁해 마을 아이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찾아주겠다”고 말했다.
<화성=박정규기자>jangk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