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말 '벤처기업육성 특별법'의 개정으로 교수 및 연구원의 겸직이 허용되면서 많은 교수들이 벤처창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본질적 기능이 '교수와 연구'라는 점을 들지 않더라도 대학교수에 의한 실험실창업은 여러 문제들을 낳고 있다.
▼교수겸직, 문제 많다 ▼
첫째, 교수나 벤처사업가는 어느 것도 겸직 가능하리 만큼 손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보지식화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학자라는 직업은 어쩌면 더욱 고단하다. 특히 대부분의 대학이 법정 교원수도 채우고 있지 못한 현실을 고려한다면, 교수가 학생지도와 연구 이외에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교수들을 창업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얼마전 고려대의 K교수는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고 나머지 시간을 이용해 사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여가시간을 이용해 벤처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벤처창업이란 3∼4시간의 여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취미삼아 하는 사업이 크게 성공한 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교수는 연구 및 교수 활동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알차게 기업을 키우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둘째, 교수는 이론의 전문가이지 사업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가 '1실험실 1창업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대학만큼 고급인력이 풍부한 곳도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벤처창업에 나선 교수들조차도 "학문의 세계와 사업은 크게 다르다" 고 고백한다.
교수는 대부분 박사급이기 때문에 사업에도 성공할 것이란 생각은 순진하다. 실제로 대학내 창업지원센터의 입주업체를 비교해 봐도 교수가 일반사업가보다 특별히 뛰어나다는 근거는 없다.
▼교수창업은 新노예제도? ▼
셋째, 천민상업주의의 유입에 따른 대학문화의 황폐화다. 전통적으로 권위와 존경으로 이어진 사제관계가 천민상업주의의 유입으로 철저히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수창업자들은 "대학만큼 고급인력을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곳도 없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이 말의 이면에는 '학위를 담보로 한 노동력의 거래'라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실례로 S대의 P모씨는 "지난 1년동안 월급은 커녕, 밥값도 자비로 부담했다"며 "스톡옵션도 교수의 처분만 바랄뿐 계약서 한 장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학위와 취업이 걸린 대학원생이 교수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학원생에게는 '교수창업=신노예제도'와 다름없다는 설명이다. '스승과 제자'란 상하관계에서 '사업주와 노동자'란 수평적 관계로 전환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학내 창업문화 확산위한 제도적 장치 필요▼
대학의 창업 전진기지화는 진정한 의미의 산학협력을 실현하고, 교수와 학생들에게 현장 체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내 창업제도에 대한 연구 부족, 대학 구성원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의 부재, 교수의 겸직 허용 등으로 실험실 창업운동은 그 장점보다 부정적 요소가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대학에 의한 창업지원'과 '대학인에 의한 직접창업' 간의 개념적 차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교수의 겸직허용 문제를 재검토하고, 건전한 대학내 창업문화의 확산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태형/동아닷컴 넷컬럼리스트 stealth8@my.donga.com
[약력]
△다다미디어 대표 △서울정수기능대학 창업보육센터 전문위원△ 광운대학교 창업지원센터 전문위원 △서울대학교 벤처경영자과정, 정보통신부 창업아카데미 △중소기업청 벤처스쿨 강사 △ 한국경제신문 컬럼리스트(이태형의 벤처세계) △한국일보사 일간스포츠 신춘대중문학상에 시뮬레이션소설 '스텔스' 당선 문단 데뷔(97년)
△저서:'넌 취직하니? 난 벤처창업한다'(한국경제신문사·98년)
'기업 가이드'(우남기획·공저·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