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터뷰]'로망스'감독 카트린 브레이아

  • 입력 2000년 6월 1일 19시 36분


“영화는 금기된 영역, 그래서 불가능하다고 믿는 대상을 영상에 담아내는 용기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포르노그라피와 예술영화의 경계는 무엇이고 여성의 성적 정체성에서 섹스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질문을 극단으로까지 밀고 간 프랑스 영화 ‘로망스’의 감독 카트린 브레이아. 24일 국내 개봉할 ‘로망스’를 홍보하기 위해 방한한 그를 지난달 29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만났다.

68년세대로 17세 때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방편으로 소설 ‘쉬운 남자’를 발표한 뒤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찾는 영화를 발표해 온 그는 깊숙이 파인 지적인 눈매와 섬세한 입술이 무색할 만큼 투사의 면모를 보였다.

―‘로망스’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자신의 내부가 아닌 바깥에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으려는 사랑의 허상과 비참함을 보여주고 생명의 신비와 미스터리로 가득찬 성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다루고자 했다. 또한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단편적 이미지만 갖고 포르노라고 금기시하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그렇다면 포르노와 예술의 경계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포르노는 성을 소비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단순한 행위만 보여준다. 하지만 예술은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쏟아붓는다. ‘로망스’의 주인공을 맡은 카롤린 두셋은 분명 포르노적인 장면을 연기했지만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깃들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창녀에 불과하다’는 말은 맞다. 극중 인물로 변신하기 위해 자신의 육체는 물론 영혼까지 팔아버리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의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예술적 장면을 아름답게 담아낸 프랑수아 트뤼포보다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불가능한 것을 영화화하려고 싸워온 오시마 감독이 내 존경의 대상이다.”

―사랑에 대해 냉소적인 영화의 내용과 ‘로망스’라는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데….

“맞는 지적이다. 처음에는 좀더 로맨틱한 느낌을 담으려 했으나 영화를 찍으면서 성의 정체성을 다루기 위해서는 성의 쾌락과 감정을 배제한 채 얼음장처럼 차갑게 다루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제목에는 빨간색 X가 함께 들어있다. X는 로맨스를 부정하는 의미인 동시에 여성염색체, 포르노 등급, 미지수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다.”

▼'로망스'는 어떤 영화인가▼

‘로망스’는 도발적인 영화다.

이 영화는 그동안 포르노와 일반영화를 구별하던 기준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남녀의 성기가 그대로 노출되는가 하면 오럴섹스와 사정 장면이 여과없이 나온다. 게다가 이탈리아의 포르노배우 로코 시프레디까지 직접 출연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성행위의 이미지는 에로틱하기보다 건조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무삭제로 ‘16세이상 관람가’ 판정을 받았고 영국과 호주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무삭제로 심의를 통과하며 전통적 심의기준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영화는 남자친구 폴로부터 육체적 사랑을 거부당하는 초등학교 여교사 마리(캐롤린 듀세)가 절망 속에 다른 남자들을 통해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담았다. 방황을 거듭하던 마리는 불량배에게 강간을 당하면서 성적 환상과 차가운 현실의 차이를 깨닫고 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폴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통해 성이 지닌 신비와 자신의 존재가치를 함께 발견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아들을 낳듯 아들은 어머니를 낳는다’는 글귀는 여성의 성적 쾌락과 출산의 고통을 한 화면에 담아낸 장면만큼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 심의에서 문제 장면들이 삭제되진 않았으나 모자이크 처리돼 오히려 엉뚱한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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