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포터/인터뷰]연극연출가 김석만씨

  • 입력 2000년 6월 2일 17시 23분


연극무대 출신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이자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인 김석만씨를 만났다.

문: 『한씨연대기』『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꿈하늘』『눈꽃』『민중의 적』『무의도 기행』『브레히트의 하얀 동그라미』등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공통된 정서가 있다. 이에 대해 설명한다면?

답: 먼저 나의 인생관, 예술관이 성장 과정에서 겪은 한국적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성장배경, 세상을 산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창작의 발상이 고전 혹은 브레히트 연극에 접목되는 것도 유사한 이유이다. 나는 평양이 고향인 부모님의 슬하에서 태어났다. 우리 가족은 월남 가족이며 6·25 직후에 태어났다. 전쟁과 분단은 현재의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승만 정권 때 숱한 데모들을 보았고 성장과정 자체가 격정의 시기였다. 모든 작품이 분단과 가족사, 근·현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두번째는 연극을 공부하면서 연극은 당대의 삶, 사회적·문화적 환경을 반영하는 거울임을 알았다. 세익스피어극도 그렇지 않은가. 연극을 통해 사회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리고 세상사에 대해 발언할 수 있다. 내 작품들이 그렇다.

문: 국립극단에서 연출한 작품이 유독 많은데...

답: 1967년 국립극단 공연인 윤조병 연출의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를 보았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사실주의 연극의 무대 환상에 반했었다. 대학 때는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에 뻔질나게 들렸다. 입장료가 없을 때는 극장 관계자를 만나러 간다면서 수위아저씨가 드나드는 분장실 옆 구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실연은 국립극단에서 1987년 차범석 작 『식민지의 아침』을 연출할 젊은 연출가를 찾는 데서 시작됐다. 당시 단장이었던 장민호 선생님은 나에게 연출 제의를 하셨고 다큐멘터리 서사극 형식으로 연출했었다. 그 후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공연『눈꽃』을 연출했고 1999년 한·중·일 동양 3국 재조명 시리즈로『무의도 기행』을 연출했다.

문: 연출가로서 배우 훈련의 방법은?

답: 중요한 것은 현재 문화 풍토에 맞는 방법론을 구축해야 하며 삶과 유리되지 않는 연기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적 연기가 반드시 전통을 바탕으로 한 연기는 아니다. 여러 문화, 당대의 삶 속에서 우리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연기 방법론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신분석학, 심리학적 접근도 필요하다. 물론 문화 유전자 내의 전통이 어떻게 흡수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관건인 것은 사실이다. 우리말을 제대로 발음하지 배우가 흔치 않은 현실이다. 단순한 화술훈련이 아닌 음성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청음과 시창연습으로 우리말에 관한 훈련이 우선돼야 한다.

문: 연출가이자 연극 교육자로서 두 분야에 대해 얘기한다면.

답: 가르치면서 연출한다는 것은 어렵다. 병행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실천 자체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연극과 학생들은 현장 작업할 경우 외부활동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허락받아야 한다. 지식은 전달이 아니며 실천이 없이는 교육적 설득력도 없다. 현대는 직업의 변화, 교육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10년 간 우리나라 직업의 25%는 사장되었다. 변화의 시대에 여러 마리 토끼를 쫓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도 든다. 교육과 창작 활동의 현장은 연결돼야 한다.

문: 문화정책으로 해결돼야 할 연극분야의 시급한 문제는?

답: 먼저 일반인에게 문화향수체험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에 예술활동이 접목돼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연극적 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번째는 예술가들에 대한 마땅한 대접이 필요하다. 국가 기관이 연극인들의 작업활동을 지원해주고 예술가를 존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 영향받은 연극인은?

답: 가장 영향받은 사람은 '브레히트(Bertolt Brecht, 독일 연출가)'이다. 젊은 시절 김지하 시인으로부터 많은 영향과 영감을 받았다. 스승으로는 버클리대 재학시절 조명을 가르쳐 주신 죠지 울닉(Georgy Ulnic)과 예일대 출신의 연극 사학자인 던바 오그댄(Dunbar Ogden), 막스와 브레히트에 눈을 뜨게 해 준 캐런 허마시(Karen Hermassi)같은 분들이 마음에 남아있다.

문: 연출가로서의 목표는?

답: 1차 목표는 '감동'이다. 보다 많은 관객에게 연극이 '감동'의 예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1차 2차 3차 목표가 모두 '감동'에 있다.

문: 끝까지 연극인으로 남을 수 있는 원동력은?

답: 항상 지금 만들고 있는 연극에 불만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 작업을 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만든 공연을 사람들이 본 후 감동받고 즐거워한다는 축복과 창작 과정의 고통이 제공하는 끔찍한 깨달음의 연속때문이다. 공연이 끝난 뒤 결과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제로(Zero) 상태 - 백지 상태를 즐긴다. 연극을 계속하는 것은 연극 속에서 나름의 즐거움을 찾기 때문이다. 원동력을 가졌기 때문에 연극을 해왔다기 보다는 어려운 과정을 지내온 결과가 원동력이 된 것이다.

홍란주 <동아닷컴 인터넷기자> wildran@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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