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꼭 50년 전에 18세 소년으로 단신 월남해 온 뒤, 갖은 시련과 고난을 겪으며 북쪽 고향땅을 우러러 살아오다가, 고희를 내일 모래로 앞두고 이런 꿈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다니 도무지 쉽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내 고향 함경남도 원산은 서울에서 불과 충북 영동(永同)까지 가기만한 거리인 220㎞. 요즘 우리네 감각으로는 자동차로 3시간이면 너끈히 가 닿을 거리임에도 지난 50년 동안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신 날짜도 모르고 지내 오다니, 세상 천지에 이런 나라가 우리 나라 말고 이 지구촌 또 어디에 있었다는 말인가. 이게 도대체 제대로 생긴 나라였더라는 말인가.
지난 50년간 고향 쪽 부모 형제 생사는 아예 마음속 깊이깊이 묻어 둔 채 체념하고 살아 왔지만, 이런 일이라는 게 체념하려고 한다고 해서 쉽사리 체념이 되는 일인가 말이다. 그나마 9·9절인 음력 9월9일이면 사망 날짜를 모르는 조상들 제사를 지내는 날이라고 해서, 30년 전부터 조촐하게 제상을 차려 조부모와 부모님 지방을 함께 가지런히 모셔 놓고 깊은 밤이면 심산유곡에서 제사를 치르듯이 식구들끼리만 제사를 모셔왔다.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가만가만히 숨을 죽이고서, 몰래몰래 어쩐지 떳떳지 못하게… 그 무슨 죄 받을 일이라도 저지르듯이…. 아, 이렇게 인륜의 가장 기본을 가슴 깊이 묻고 살아온 우리 삶이 어찌 온전한 사람살이였더라는 말인가.
허투루 말을 안했을 뿐이지, 이건 월남한 실향민 누구나가 통절하게 겪어온 아픈 사연들이었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려 모처럼 북한 땅으로 들어선 80 고령의 할아버지들도 ‘어머니’를 부르면서 코흘리개 어린아이들마냥 펑펑 울어대질 않던가.
이 친족 이산의 아픔을 두고 구차한 잔소릴랑은 하지들 말라. 오죽하면, 여북하면 그 어머니 아버지를 고향 땅에 버려둔 채, 죽기 아니면 살기로 타향으로 떠나왔겠는가. 그 시절의 그 일을 사람살이 평상의 잣대로 함부로 재려고 드는 것은 그 시절, 그 상황을 너무도 모르는 소리들이요, 심지어는 ‘죄악’이다.
하지만 남북 정상의 이번 ‘첫 만남’으로 이 문제가 시원하게 대뜸 완전히 풀리리라고 미리부터 기대일랑은 하지들 말자. 대소사를 막론하고 항용 그렇듯이, 지난 50여년간 남북간에 첩첩 산처럼 막혔던 것을 뚫고 풀어내는 데는 피차의 형편만큼으로 시간과 시일을 요할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 5일, 16대 개원 국회 시정연설에서 “모든 문제를 격의 없이 논의하고 가능한 일부터 성사되도록 하겠지만, 합의가 안된 것은 2차, 3차 회담에서 처리해 나가겠다”고 밝히며, 앞으로 남북 정상이 자주 만날 것을 시사(示唆)하질 않았던가. 이만만 해도 어디인가. 명실공히 천지 개벽과 맞먹는 엄청난 변화가 아닌가.
그러니 이제 남북간의 모든 앙금이 풀리는 쪽으로, 그 첫 길목에 들어선 이 모처럼의 남북 정상들의 허심탄회한 ‘첫 만남’에, 추호나마 부담일랑 주지 않도록 하자.
아무쪼록 우리 모두는 우선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분 정상이 대목대목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모습부터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우리도 다같이 마음껏 웃기부터 하자.
바로 이런 희한한 큰 일이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서기 2000년에, 그리고 6·25전쟁 50주년을 맞을 무렵에 정확하게 맞춰 벌어지게 됐다는 사실부터가, 그 어떤 큰 조짐, 우리 삼천리 강산의 길조(吉兆)로 받아 들여지지가 않는가.
이호철(소설가·경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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