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규민/'교만'의 교훈

  • 입력 2000년 6월 11일 19시 38분


‘교만’의 교훈

태초에 인간은 팔다리가 합해서 여덟이었고 머리는 두 개였다고 한다. 지금보다 두 배나 힘이 세고 머리도 두 배로 좋아 자주 신에게 도전을 하던 인간은 결국 제우스신의 노여움을 산 나머지 번갯불에 의해 반으로 나뉘어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됐다. 제우스신은 인간의 힘과 지혜를 반으로 줄이는 대신 통치할 대상을 두 배로 늘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이 얘기는 절반으로 잘리게 될 처지의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교훈적이다.

▷지난주 MS사에 대해 내려진 워싱턴 연방지법의 독점금지법 위반 판결은 빌 게이츠에게 일생일대 최대의 수모가 될지도 모른다. “빈자와 약자들이 당하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며 각종 사회사업에 수억달러씩 쾌척하던 그가 바로 시장에서의 불공정 행위로 독점적 혜택을 누린 장본인이라는 도덕적 비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MS사가 최종심에서 과연 두 개의 회사로 쪼개져 힘이 반으로 줄어들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가 입을 도덕적 손실은 클 수밖에 없다.

▷빌 게이츠의 패인은 94년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MS사는 윈도운영체제 설치 관련 불공정 행위로 기소됐다가 반성문 비슷한 시정안을 내놓는 선에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 문제는 그가 방송에 나가 “어차피 시정할 게 별로 없는데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은 처음부터 우리가 옳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던 것. 미 정부는 “그가 정부를 공개적으로 조롱했다”며 앞으로 다시는 MS와 협상을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번에 미국 정부는 그 결심을 실천했다.

▷교만한 인간이 제우스신에게 당했던 과정을 밟는 것인가. 이번 재판에서 시간당 수임료가 1000달러 가까운 저명 변호사 수십명이 30여달러씩만 받고 정부 편에서 ‘MS죽이기’에 나섰고 넷스케이프 인텔 컴팩 등 기라성 같은 기업의 경영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나가 MS에 불리한 증언을 쏟아 낸 것은 교만이 얼마나 많은 적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대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이번 판결은 반면교사적 교훈이라 하겠다.

이규민<논설위원>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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