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화백의 망향가]"동생과 통일전시회 소망"

  • 입력 2000년 6월 16일 18시 50분


한국 화단의 최고 원로인 미수(米壽·88세)의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화백. 경기고보 3학년에 재학중이던 51년 월북해 북한의 공훈화가가 된 70대 초반의 그의 막내 동생 기만.

남과 북에서 독보적인 한국화가로 성장한 두 형제는 TV로 중계되는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지난 며칠간 하염없이 눈시울을 적셨을 것이다.

병석에서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미수전(7월 5일∼8월 15일) 개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형 운보는 16일 충북 청원군 북일면 형동리 ‘운보의 집’에서 모처럼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휠체어로 마당을 산책하며 동생에 대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어렸을 때 내가 늘 업고 다녔지. 등록금도 제때 못주고 뒷바라지도 못해주었는데 그렇게 자리를 잡고 산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동안 안위가 걱정돼 만나고 싶다는 내색을 못했는데 이젠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전시회 때 올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어….”

서울에 살던 운보의 형제들은 51년 사상적 차이로 뿔뿔이 흩어졌다. 중공군 개입 소식을 들은 운보는 부인 우향 박래현(雨鄕 朴崍賢·76년 작고)씨와 함께 처가가 있는 전북 군산으로 피란을 떠났고 막내동생 기만은 누나 기옥(基玉·74)과 함께 38선을 넘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막내동생이 북한에서 유명화가가 돼 있으며 1930년대말부터 40년대 초까지 그린 4폭짜리 미인도 등 자신의 작품 30여점이 평양의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 전시돼 있다는 사실을 운보가 안 것은 90년대초. 북한에 다녀온 인사들의 전언을 통해서였다. 여동생 기옥이 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들었다.

이후 인편을 통해 동생의 편지와 사진이 전해졌고 제3자를 통해 베이징에서 만나자는 전갈도 받았다. 하지만 운보는 단호했다. “통일이 돼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좋다. 공연히 아는 내색을 했다가 동생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잡지에 실린 동생의 그림을 보곤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고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으나 화가가 될 줄은 몰랐다. 북에 가서 그림공부를 많이 한 것 같다”며 대견해했다. 자신의 그림이 북한에 잘 보관되고 있는데 대해서는 “해방전 이북에서 두차례 전시회를 했는데 그때 팔린 그림들이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병상의 운보를 돌보고 있는 외아들 완씨(51)는 “아버님께서 요 며칠 새 TV를 보면서 여러차례 눈물을 흘리셨다. 생시에 꼭 동생들과 만나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서는 운보 형제가 남북화합의 상징으로 서울과 평양에서 합동전시회라도 갖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청원〓오명철기자>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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