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피노 약력▼
△1919년 미국 캔자스주 출생
△1948년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1949∼90년 UC 버클리대 교수,이후 명예교수
△1978년 UC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 설립, 90년까지 소장 역임
△북한 4차례 방문(89, 91, 92, 95년)
△미 학술원 회원(1912∼)
△‘한국의 공산주의’ 등 저서 38권, 미국의 아시아 정책 등에 관한 논문 500여편
▼케네스 퀴노네스▼
△1943년생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역사 및 동아시아 언어) 취득. 학위논문 ‘조선 후기(1864∼95) 권력의 선행조건’
△코네티컷트리니티대 역사학과 조교수(1977∼80)
△주한미국대사관 정무담당관(1982∼85) 및 부산의 미국영사관 영사(1985∼87) 역임
△1992년 국무부 북한담당관 역임
△영변 등 북한 13차례 방문
△1997년 국무부에서 은퇴 후 국제구호단체인 머시코의 동북아프로젝트담당 국장으로 재직 중
▼"美 대선임박 한반도 게임 어렵다"▼
▽퀴노네스〓안녕하십니까.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극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스칼라피노〓이번 정상회담은 당초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 성공적인 것이었습니다. 두 정상은 핵과 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모든 중요한 현안에 관해 토의했고 상호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목표로 하는 공동선언에 합의했습니다. 이산가족 재회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통한 차기 정상회담 개최 등은 남북이 화해로 가는 길에서 필수적인 징검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당국간 대화와 민간 차원의 대화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됩니다만 아직은 멀고 어려운 과정의 시작 단계에 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퀴노네스〓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여기 워싱턴에서도 모두 정상회담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미 국무부와 민간 전문가들은 기대 이상의 성과에 경탄하면서 남북간 합의에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에서 더 많은 진전이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스칼라피노〓우선 한반도의 중요 현안을 당사자인 남과 북이 직접 대화를 통해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의 대북정책도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과의 미사일 협상과 연계해서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호주 이탈리아 등이 북한과 수교한 것처럼 미국도 긍정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의 대북정책권고안(페리 보고서)을 이행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퀴노네스〓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은 한국인들이 쥐고 미국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만 해야 한다는 이야기군요.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 이후 남북대화가 지속될 전망은 어느 때보다 높은 편입니다. 무엇보다 남북의 최고 지도자들이 화해를 추구하겠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거든요. 1972년의 7·4공동선언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가운데 남북간의 비밀 접촉을 통해 만들어졌고, 1991년 채택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기본합의서)’는 당국간 실무선에서 이루어졌지만 이번엔 남북 양측의 두 정상이 공개적으로 직접 토론을 통해 공동선언에 합의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를 요약하자면 앞으로 공동선언의 이행이 성공할 것인지 혹은 실패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남북 양측의 정상들에게 달려 있지, 아래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남북간에는 어쩔 수 없는 오해와 이견도 있겠지만 두 정상은 대화를 계속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논의를 미국과 북한의 관계로 옮겨 보지요. 미 의회에서는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만 앞으로 미-북 관계가 어떻게 변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스칼라피노〓올해가 미국에서는 선거의 해라는 게 문제입니다. 11월 대통령 선거의 초점은 이미 국내 정치 문제에 맞춰져 있지 않습니까. 미국 유권자들은 사회보장 제도의 존속에 관심이 있지 한반도의 긴장완화 추구 방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또 북한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은 여전히 좋지 않은 편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아무래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반도 문제를 생각하기보다는 정치적인 판단을 하게 되겠지요. 따라서 미-북 관계는 불안정하고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퀴노네스〓특히 공화당은 북한의 미사일과 핵 문제에 대해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이 그동안 취해온 태도를 민주당 정권의 대표적인 외교실책으로 몰고 가려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역시 미-북간 화해는 더욱 복잡해지고 속도도 더디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과 북한의 관계는 어떻게 보십니까.
▽스칼라피노〓일본의 혼란한 국내 정치도 북-일 관계개선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자민당은 다가오는 총선에서의 승리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고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는 대중적 지지가 약한 상태입니다. 워싱턴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북한이 과거의 적인 일본과 대화하려는 것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준비가 안돼 있습니다. 북-일간 현안이 까다로운 것도 양국간 대화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일본인 10여명의 납치 실종에 책임이 있다는 실종자 문제는 대표적 사례이지요.
▽퀴노네스〓한반도 주변 4강 중 러시아와 중국은 대(對) 한반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내 정치문제 때문에 방해를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영도하에 지난 10여년간에 걸친 국내 정치 및 경제 혼란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도 10여년간의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국제 정치무대에 확실히 복귀하고 있습니다. 중국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톈안(天安)문 사태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경제개혁을 둘러싼 중국 내부의 논란을 해결했지요.
▽스칼라피노〓러시아와 중국은 남북한의 화해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태세가 돼 있습니다. 최근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데 대한 답방으로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곧 방북하는 것 등이 그같은 사례입니다. 일각에서는 북한과 과거 사회주의 우방국들의 관계 개선이 사회주의 진영과 서방 진영이 대립했던 냉전시대의 세력 균형이 복원되는 것으로 보기도 하나 저는 이같은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관계 개선은 남북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는 두 나라가 북한과의 군사공조를 두드러지게 약화시킨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국은 북한과의 상호 방위조약에서 유사시 자동 개입 조항을 삭제했고 이제는 더 이상 북한에 군사지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두 나라가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과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하겠지요.
▽퀴노네스〓4강은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대북정책을 한결같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모두 남북간의 대치를 포용정책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김대중대통령의 정책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한국과 외교 및 교역 관계를 맺음으로써 북한의 독단에 제동을 걸었지요. 북한은 적대적인 대남정책으로 인해 1991년 이후 그들의 적뿐만 아니라 우방으로부터도 소외돼 왔습니다. 동북아의 새로운 정세는 북한으로 하여금 북한의 생존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남북간 대화의 지속에 좋은 조짐이랄 수 있습니다.
▽스칼라피노〓동북아의 새 국제질서가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제2차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4강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대화의 장을 갖게 됐습니다. 이들 국가는 평화적이고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를 원하고 있습니다. 또 남북간의 대화가 대치와 경쟁을 대신하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유리한 구도 하에서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남북간의 화해를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강대국들은 앞으로 상호간의 긴장과 한반도의 긴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함으로써 남북이 화해를 위해 전개하고 있는 새로운 과정을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와 미국 일본의 대북 국교 정상화가 포함됩니다. 따라서 앞으로 몇 주, 혹은 몇 달이 매우 중요합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여러 개 안고 있습니다. 이를 풀어나가기 위해선 한국 정부와의 긴밀한 공조가 더욱 중요합니다. 이미 미국은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시절에 비해선 한국 정부와 많은 것을 이뤄낸 상태이기는 합니다. 저는 남북 화해에 관해서는 조심스럽지만 낙관하고 있습니다.
▽퀴노네스〓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현명하겠지요. 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통일이 금방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전망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해 더욱 커진 게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씀이 있으신지….
▽스칼라피노〓북한이 최근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동시에 개선하려고 하는 것이 매우 흥미롭군요. 중국은 북한의 붕괴와 핵무기 보유, 전쟁을 모두 원치 않고 있어요. 이는 미국 일본도 원하는 바이므로 서로 공조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의 역할이 과연 어떻게 나타날지 관심입니다.
▽퀴노네스〓오늘 유익한 대담이 되도록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칼라피노〓고맙습니다.
<정리·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