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국민의 바람이 회담을 통해 충분히 달성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많은 국민은 정부가 추진해왔던 경제협력과 문화교류가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면서도 일부에서 적극적인 지지를 주저했던 이유는 이러한 연성분야에서의 협력과 교류가 평화를 보장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동선언문에는 교류와 협력에 관한 합의는 명백히 제시된 반면,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합의는 불명확하다.
엄격히 말하면 북측은 자주와 통일의 명분과, 협력과 교류의 실제를 모두 확보했다. 반면 우리는 계속적인 교류와 만남만을 약속받았을 뿐, 평화에 대한 보장은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정책담당자들은 남북한이 서로 침략하거나 위협할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확인만으로 한반도에 더 이상의 전쟁이 없다는 확신을 갖기는 미흡하다.
둘째, 통일방식으로 합의한 자주적 원칙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북한은 자주라는 의미를 외세배격이라는 합목적성에 비중을 두어왔다. 이에 비해 우리는 남북한 당사자라는 회담주체로 해석해 왔다. 공동선언문은 이 차이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그 원인은 한반도 통일문제의 본질에 있다. 한반도에서 협력과 교류는 남북한 민족문제이지만, 평화와 통일의 문제는 국제적 성격이 강하다. 분단이 국제적 냉전상황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던 것처럼, 분단 해소와 평화의 문제 역시 남북한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정상회담이후 미국 일본과의 정책 조율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셋째, 통일방안에 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회담결과는 남한의 ‘연합’과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을 유사한 단계적 혹은 점진적 개념으로 간주하고 자주적 평화의 조건으로 보았다. 그러나 국가연합과 연방국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국가연합은 별개의 주권국가가 조약을 매개로 서로 연결고리를 갖고 상호관계를 규율한다. 남북한이 연합체를 구성하려면 불가침조약의 체결이 필수적이다.
연방국가는 별개의 주권국가를 상정하는 대신 별도의 ‘연방정부’를 만들어 통일된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 외교적 대표권은 물론 통상권과 국방권도 이 연방정부에 이양해야 한다. 공동선언에서 언급된 ‘낮은 단계’란 바로 국방권이 남북한 개별정부에 잔류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하지만 남북한이 국방권까지 연방정부에 이양한다는 것은 현 단계에서 쉬운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국가연합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으로 이행할 때보다 ‘낮은 단계’의 연방에서 ‘높은 단계’의 연방으로 이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훨씬 어렵다. 이런 깊숙한 논의는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으로 남북간에 충분한 신뢰가 쌓인 연후에야 가능한 문제다. 따라서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단계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공동선언에서 발견되는 의문점이 해소될 때 이 선언의 의미는 현실적 무게를 더하고 광범한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민족의 장래를 위해 통일에 대한 무관심은 경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성급한 통일논의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진단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남북한 관계, 한반도 평화의 열쇠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남북한이 합의한 대로 공종공영부터 실천하는데 있다.
남궁곤 (21세기평화연구소 상임연구위원·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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