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士칼럼]한승주/北은 무엇을 원하나

  • 입력 2000년 7월 13일 19시 18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당시의 충격과 흥분에서 벗어나 마음을 가다듬고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 관계와 한반도의 장래를 숙고할 때가 되었다. 남북한 관계의 장래를 점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상정하고 심리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먼저 남북 지도자들 각각의 의도와 구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남쪽은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신뢰 조성이 이뤄질 것을 원한다. 평화와 안정의 터전을 마련하고 남북간의 교류 협력을 확대해 궁극적인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이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왜 정상회담을 수락했고, 왜 김대중대통령을 위시한 우리 대표단을 환대했느냐는 데에 관심을 모아 왔다. 그러나 정작 물어야 할 것은 그가 앞으로 남북 관계는 물론 북한 자체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우리 자신을 김위원장의 입장에 놓고 볼 때 다음과 같은 포괄적인 목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남한과 세계의 지원을 받아 경제를 부흥시키는 일이다. 둘째는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고 체제를 보호하는 것이다. 세번째는 남한과 최소한 대등한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를 가능한 한 경제면에 국한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 교류는 정치적으로 필요한 만큼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체제는 어떤 모델을 추구할 것인가.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중국 모델이다. 그러나 중국 모델을 따르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중국은 초기 경제 개발에 북한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우선 자국을 개방하면서 체제에 대한 위협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또 중국 자체가 커다란 시장으로서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가 용이했다. 동시에 아시아 각국에 퍼져 있는 화교(華僑)들의 협조를 얻을 수 있었다. 북한은 제한적인 체제 개방과 주로 남한과의 협조로 경제발전을 이뤄야 하는 입장이다.

군사와 안보에 있어서도 북한은 현재의 정책을 대폭 수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어려움은 군부를 포함하는 내부적 역학 관계에 기인하는 점도 있으나 동시에 미사일 등 위협적인 무기가 강대국과의 협상에 지렛대가 된다고 판단하는데도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북한은 이미 각국과 외교 관계를 확대하고 아세안 지역안보 포럼(ARF)에 가입을 신청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4자회담이나 6자 회담 등 다자 협상, 또는 협의 메커니즘을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남한을 비롯한 미국 일본 등과 양자 협상을 통해 최대한의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석을 근거로 우리는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 3가지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첫째는 모두가 희망하는 시나리오이다. 즉 남북간에 긴장이 해소되고 평화적인 관계가 정착되는 것이다. 동시에 협력과 교류도 활성화되고 확대돼 남북한의 한민족이 다같이 혜택을 받는 시나리오이다.

둘째는 남북한 중 한쪽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화해 협력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반목과 불신의 상태로 복귀하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돼서는 안되겠고 이는 우리에게 커다란 실망과 좌절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세번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남한이 안보 경제 정치면에서 어려움을 만나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다. 먼저 위협 해소라는 안도감에서 미군 철수 등 안보 체제가 약화될 수 있다. 한편 능력에 넘치는 대북 지원으로 우리 경제 자체의 부실화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개헌 문제 등을 둘러싼 권력 구조 및 승계 문제가 쟁점화해 정치적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물론 제1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될 것이다. 동시에 만의 하나 우리가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한승주<고려대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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