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여야가 남북문제를 놓고 정쟁(政爭)을 시작했다. 이런저런 일로 티격태격하면서 양쪽의 감정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북한까지 어쭙잖게 끼어들면서 묘한 4각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민족의 비원(悲願)이 담긴 문제이니 만큼 이번만은 달랐으면 하는 바람은 역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차제에 명확히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야당이나 언론의 비판이 북한을 괜스레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이러다가 북한이 손을 털어 버리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정도까지 판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생각해 보면 그런 우려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
북한과 대화의 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과공(過恭)이 돼서는 안된다. 우리가 중심을 잡고 문제를 풀어 나가면 포용이 되지만, 북한의 비위를 맞추느라 우리의 정체성을 잃으면 저자세가 되고 만다.
북한에서는 원샷정치가 통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북한에서는 김위원장의 한마디면 모두가 ‘위하여’를 복창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이견을 말할 자유가 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실상이요, 자랑이며 또 힘의 원천이다. 만일 이런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해서 문제가 된다면 화해고 통일이고 모든 것을 다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김위원장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들은 남한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야당이 한 두번 모진 소리를 했다고 해서 판이 깨지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부는 야당의 비판적 자세를 등에 업고 북한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북한 지도자들이 남한식 민주주의에 익숙해지도록 기대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여당이 원샷정치에 유혹을 느끼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집권층의 고위인사 중에는 야당이나 언론이 민족적 대사에 잡음을 일으키려 한다면서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들의 눈에는 한 목소리로 열광하던 평양 시민들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 흉내를 내서는 안된다.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원샷정치는 일견 호쾌해 보이지만, 그 일사불란함 속에서는 민주주의가 숨을 쉬지 못한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는 ‘신의 나라’에서나 가능할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어려움에 대해 한탄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2400년 전 니키아스 장군은 민주국가 아테네의 자부심을 고취시킴으로써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웠고, 그 결과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서 조국을 지켜냈다.
말도 많고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의 강점은 그 시끄러움과 다양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야당이 만세를 따라서 외쳐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려서는 안된다. 원샷정치의 환상에 빠지면 민주주의는 설자리가 없어진다.
물론 야당의 행태에 대해 실망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 판단은 국민에게 맡겨두면 된다. 굳이 청와대 고위 관계자까지 나서서 야당의 ‘냉전적 사고’ 운운하는 것은 그 속만 보일 뿐이다. 민족분단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것, 이 이상 더 냉전적인 사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정부 여당부터 마음을 비워야 할 것이다.
민족통일의 성사(聖事)에 딴죽을 거는 것 같은 야당이 못마땅한가? 그럴수록 정현종 시인이 읊었던 바, ‘자기를 버리면 두루 하늘이고 자유이고 사랑인 것을’하는 경구(警句)를 진지하게 음미하기 바란다.
<서병훈 숭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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