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근무하는 외국 대사들은 이런 특이한 ‘한국식 정치’를 지켜보며 그 이유를 국회의원들에게 묻곤 한다. 의원들이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아 상대측을 압박하기 위해 그런다’고 대답하면,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등지고 돌아선다고 일이 되나? 뜻이 관철되지 않을수록 의사당에서 상대당 의원을 만나 머리와 무릎을 맞대고 요구해야 되지 않는가?’라고 되묻는 것이 보통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여야 의원들이 지난 주 정당간의 대치나 정쟁(政爭)으로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가 파행으로 치닫더라도 이 위원회만은 정상적으로 소관 업무를 심의해 나갈 것이라고 이른바 ‘무파행 선언’을 했다. 위원회 전체 18명 가운데 민주당의원 8명, 한나라당의원 4명 등 모두 12명이 서명했다. 국회가 삐걱대더라도 최소한 이들 12명이 개회요구서를 내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상임위가 열릴 수 있도록 길을 연 셈이다.
한줄기 신선한 바람 같기도 하다. 정치가 민생을 걱정하기는커녕,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짜증스럽게 여겨온 세월이 너무 길고 지루했기에 더욱 산뜻한 느낌을 준다. 지난 번 비교적 젊은 여야 의원들 7명의 ‘공격수 거부 선언’만큼이나 울림을 주고 있다. 정치 개혁이라는 국민의 절실하고 뜨거운 여망이 국회의 구석구석에 스며 이제 작으나마 변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리라.
이러한 울림이 모여 구태정치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정치 문화와 행태의 대(大)지각 변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선언에 동참한 한나라당 간사의원도 “과기정통위는 정치적 대립쟁점이 적어 무파행 실천이 가능하다. 다른 상임위에도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간사의원도 “정치 개혁을 의원들이 실천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정쟁과 총론 타령에서 벗어나, 각론으로 다투고 민생과 정책에 몰두하는 국회로 나아가자는 의원들의 잇단 ‘양심선언’에서 우리는 정치 개혁의 가능성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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