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 아픈 사연]용인 남사면 원암2리 신광철씨 일가

  • 입력 2000년 7월 23일 19시 23분


경기 용인시 남사면 원암2리 신광철씨(48) 집에 수마(水魔)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22일 저녁. 이날 원암2리에 오후 1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후 7시부터 갑자기 빗줄기가 이어지면서 4시간 동안 시간당 8㎜에서 60∼116㎜의 게릴라 호우로 돌변했다.

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한 오후 8시경 신씨 집 뒤쪽 산허리에 있던 소나무가 벼락을 맞고 쓰러졌고 10여그루의 나무가 흙더미와 함께 신씨 집을 덮쳤다.

신씨 집은 48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 중심지에서 산비탈쪽으로 80m 가량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곳. 사고가 났을 때는 신씨를 포함한 가족 7명이 저녁을 먹은 뒤 막 잠을 청하려던 상태였다.

마루에서 잠자던 신씨의 어머니(79), 큰아들 동길씨(19·Y대 1년), 여동생(30)이 흙탕물과 가재도구에 뒤엉켜 집밖으로 쓸려 나갔다.

또 골프장에서 잡부로 일하며 전날 야근작업을 마친 신씨와 부인 권정애씨(44)가 안방에서 곤한 잠에 빠져들었으나 이들은 작은방에 있던 막내딸(15)과 함께 흙더미에 파묻혀 집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 와중에 정신을 차린 동길씨가 흙더미에서 탈출한 뒤 이장 진용배씨(45) 집으로 달려가 구조를 요청했다. 경기 오산시 S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동길씨는 “마치 부탄가스가 터진 것처럼 굉음소리를 내며 집 벽체가 무너졌고 흙물이 온몸을 덮쳤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장의 연락을 받은 면사무소 직원과 의용소방대원 등 10명이 지프를 타고 오다 물살에 휩쓸리기도 했으나 걸어서 사고현장까지 달려갔다. 이미 원암2리에 있는 폭 15m, 깊이 2m 규모의 둑도 터져 동네 전체에 물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의용소방대원 등이 흙더미에서 1시간반 가량 구조활동을 펴 신씨 등 6명은 무사히 구출했으나 부인 권씨는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이미 숨이 끊긴 상태였다.

면사무소 직원 박성환씨(43)는 “현장에 가보니 신씨 집 중간이 완전히 뚫려 있었고 방 4개 중 거실과 안방 등의 가재도구가 모두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말했다.

신씨 집 이외에도 원암1, 2리 일대 50여가구와 4㏊ 규모의 논들이 둑에서 밀려든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보았다. 마을로 통하는 2개 도로도 60∼70m 유실돼 군경 80여명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오산시쪽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개발되면서 원암2리 앞을 흐르는 성은천의 물 흐름이 원활치 못해 둑이 터졌고 침수피해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다리에 붕대를 감아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동길씨는 현재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면서 열심히 식구들을 돌봐오던 어머니 시신을 외로이 지키고 있다. 나머지 가족 5명은 부상이 심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용인〓박희제기자>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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