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한 오후 8시경 신씨 집 뒤쪽 산허리에 있던 소나무가 벼락을 맞고 쓰러졌고 10여그루의 나무가 흙더미와 함께 신씨 집을 덮쳤다.
신씨 집은 48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 중심지에서 산비탈쪽으로 80m 가량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곳. 사고가 났을 때는 신씨를 포함한 가족 7명이 저녁을 먹은 뒤 막 잠을 청하려던 상태였다.
마루에서 잠자던 신씨의 어머니(79), 큰아들 동길씨(19·Y대 1년), 여동생(30)이 흙탕물과 가재도구에 뒤엉켜 집밖으로 쓸려 나갔다.
또 골프장에서 잡부로 일하며 전날 야근작업을 마친 신씨와 부인 권정애씨(44)가 안방에서 곤한 잠에 빠져들었으나 이들은 작은방에 있던 막내딸(15)과 함께 흙더미에 파묻혀 집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이 와중에 정신을 차린 동길씨가 흙더미에서 탈출한 뒤 이장 진용배씨(45) 집으로 달려가 구조를 요청했다. 경기 오산시 S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동길씨는 “마치 부탄가스가 터진 것처럼 굉음소리를 내며 집 벽체가 무너졌고 흙물이 온몸을 덮쳤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장의 연락을 받은 면사무소 직원과 의용소방대원 등 10명이 지프를 타고 오다 물살에 휩쓸리기도 했으나 걸어서 사고현장까지 달려갔다. 이미 원암2리에 있는 폭 15m, 깊이 2m 규모의 둑도 터져 동네 전체에 물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의용소방대원 등이 흙더미에서 1시간반 가량 구조활동을 펴 신씨 등 6명은 무사히 구출했으나 부인 권씨는 온몸에 피멍이 든 채 이미 숨이 끊긴 상태였다.
면사무소 직원 박성환씨(43)는 “현장에 가보니 신씨 집 중간이 완전히 뚫려 있었고 방 4개 중 거실과 안방 등의 가재도구가 모두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말했다.
신씨 집 이외에도 원암1, 2리 일대 50여가구와 4㏊ 규모의 논들이 둑에서 밀려든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보았다. 마을로 통하는 2개 도로도 60∼70m 유실돼 군경 80여명이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오산시쪽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개발되면서 원암2리 앞을 흐르는 성은천의 물 흐름이 원활치 못해 둑이 터졌고 침수피해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두 다리에 붕대를 감아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동길씨는 현재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면서 열심히 식구들을 돌봐오던 어머니 시신을 외로이 지키고 있다. 나머지 가족 5명은 부상이 심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용인〓박희제기자>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