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눈앞에 다가온 가운데 또 다른 이유로 가슴 설레는 젊은이가 있다.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8·15 범민족통일대축전’에 일행 7명과 함께 남측 대표로 참가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강형구(姜亨求·31)대외협력부장.
그는 지난해 8월7일부터 26일간 숙소였던 고려호텔 ‘의례원’(접대원·북에서는 선별된 재원만이 맡는 민간외교관 역할)인 양정희(楊正熙·25)씨와 애틋한 사랑을 키웠다.
남측 손님의 식사를 담당하던 양씨는 수줍음 많고 순진한, 그러나 자기 생각을 표현할 때는 거침이 없는 여성이었다는 게 방북단의 공통된 증언.
“식사 때마다 자연스레 만나면서 서로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는 강씨는 남들보다 일찍 식당으로 가거나 식사 뒤 설거지를 돕는다며 양씨 곁에 남아 사랑을 키웠다.
양씨도 이런 강씨를 ‘오빠’라 부르며 따랐고 서로 ‘껌통’(강) ‘콩새’(양)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강씨가 축구를 하다 무릎을 다치자 양씨가 알로에를 구해와 상처에 발라주었고 강씨는 남쪽 김치 맛을 궁금해하는 양씨를 위해 오이소박이를 담가주기도 했다.
당시 축전에 참가한 남북 대표들은 이들의 사랑에 ‘바람잡이’역할을 했다. 김영성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참사와 방북대표단장이던 이성우(李星雨)부산연합 공동의장, 해외대표 정기열(鄭己烈)목사 등이 이들을 맺어주기 위해 적극 노력한 것.
현재 방한중인 정목사는 “이들 남남북녀(南男北女)를 맺어주는 일은 통일운동이자 온 민족의 경사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감정은 분단이란 장벽 앞에 접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기로 된 9월2일 아침 두 사람은 1시간 동안 말없이 울었다. 이때 양씨는 강씨의 손을 잡고 “앞으로 이곳에 오는 남녘의 모든 사람에게 오빠의 소식을 물어보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그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평생 통일운동에 매진하는 게 나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귀국 뒤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구속돼 1심에서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그는 처음에는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양씨에게 부담을 줄까 우려해서다.
행여 ‘콩새’가 비칠까, 대통령 방북기간 내내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는 강씨는 요즘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북한 가요를 즐겨 부른다고 했다.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서영아기자>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