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권영한/韓電 민영화 더 미룰수 없다

  • 입력 2000년 7월 31일 19시 27분


한전 구조 개혁이 기약도 없이 표류하고 있다. 정부는 오래 전부터 대규모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값비싼 외화로 국제 컨설팅까지 받아가며 구조개혁안을 마련했다. 한전은 한전대로 경쟁없는 성역이라는 독점 공기업의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회사를 쪼개 경쟁이라는 적자생존의 정글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국회에 상정된 한전 구조개편 특별법안이 언제 처리될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의 개혁에 대해서는 많은 찬반 논의가 있었지만 시대 변화에 적응하고 공기업의 태생적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경쟁 체제 도입밖에 없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30조원에 이르는 총부채에, 비효율적인 조직 및 인력 운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없이 시도된 경영자 의지에 의한 내부 개혁이란 것은 세계 5위 규모의 거대한 공룡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판명됐기 때문이다.

추진중인 구조 개편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점 구조를 타파하고 경쟁 체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안도 송배전과 발전사업을 분리하고 발전부분은 경쟁 체제로 할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한 회사가 국가 전체의 전력 생산부터 배달 서비스까지 독점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개혁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개혁 신중론자들이 흔히 들고 나온 것이 외자도입과 관련된 국부 유출론이다. 그러나 적어도 전력산업에 있어서는 외자 유치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선진 경영 기법과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기업 가치를 높일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 증대와 고용 확대를 통한 국부 창출의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최근 발표된 개혁안대로 외국인의 경영권 참여를 제한하고, 지분 매각도 50% 이하에서 경쟁 입찰을 실시한다면 국부 유출이나 외국 종속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편, 소위 헐값 매각이 우려되면 국회나 시민단체가 감시할 기회는 충분히 있다. 또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있다. 또 민영화된 회사는 기술 혁신과 원가 절감으로 경쟁력을 높여야지 전기요금을 인상해 이익을 챙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충고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개혁 지연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다. 벌써 몇 년째 구조개편 준비에 쏟아부은 자금과 인력이 얼마인가. 한전은 이미 발전 부문을 내부적으로 분할하고 전력거래소를 설치했는데, 수만명의 한전 직원과 협력 기업은 개편이 되는지 안되는지도 모른 채 2년이 넘도록 마음만 들떠 있으니 부작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한전의 구조 개편을 되돌릴 수도 없는 판에 시간만 끈다고 나아질 것도 없고 오히려 시행 지체에 따른 손실만 커질 것이다.

이제는 정치권이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려 기술 혁신, 전기위원회 설립 등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천 프로그램 완비로 개혁이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 시점이다.

권영한(한국전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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