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고인은 59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64년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일원으로 한국에 와 전남 소록도 성당에서 4년간 선교활동을 벌였다. 이후 빈민운동에 참여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한 그는 선교사이기 전에 한 사람의 민중임을 자처했고 87년 충남 당진에서 농민들과 농사를 짓기도 했다.
고인의 신념에 찬 인생이 가장 인상깊게 투영된 곳은 바로 매향리. 그는 매향리 집회가 경찰의 원천 봉쇄로 막히면 5km가 넘는 논길을 걸어서라도 집회에 참석하곤 했다.
작년 11월 이후 매달 미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 요구 집회에 단 한차례도 빠진 적이 없이 ‘개근’했다. 그가 29일 새벽 지병인 직장암으로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타계하자 매향리 주민들은 “한국민중과 동고동락했던 위대한 성직자가 떠났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