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한 중 일 3국은 유럽연합의 출범과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을 위시한 범세계적 지역주의 추세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3국만을 위한 독자적 경제협력체는 물론 쌍무적인 지역협정도 체결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7년 말의 아시아 금융위기와 그 전염과정을 직간접적으로 겪어본 한 중 일 3국은 지역경제협력에 대해 좀더 긍정적인 자세를 갖게 된 것이 분명하다. 1999년 11월 마닐라에서 개최된 동남아국가연합(ASEAN)+3 회의시 한 중 일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연구에 착수하기로 합의한 것은 이러한 자세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 즈음하여 필자는 한 중 일 3국 재무장관 정례회의를 제의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금융위기의 발생소지와 전염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거시경제정책의 조율과 협의, 금융관련 정책 및 단기자본 유출입에 관한 정보교환 등이 원활하게 이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7월 31일∼8월 2일, 3일간 미국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동북아 경제협력 구상’ 국제회의에 참석한 바 있다. 이 회의에서는 동북아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민간자본 유치에 선행돼야 할 도로 항만 통신시설 등 현재 크게 미흡한 사회간접자본 확충방안 등이 중점 논의됐다. 특기할 만한 것은 동북아지역이 필요로 하는 사회간접자본 형성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주장은 이 지역이 필요로 하는 사회간접자본 투자소요액과 기존의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기구와 일본을 비롯한 이 지역 국가가 제공할 수 있는 공공자금, 그리고 이 지역에서 동원할 수 있는 민간자금 추정액과의 차액(연간 50억달러 이상)을 조달하기 위해 국제금융시장에 나가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지역금융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데 주 근거를 두고 있다. 또한 동북아지역의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필요한 북한경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궁극적인 한반도 통일에 동북아개발은행이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주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동북아지역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우수한 인적자원을 동시에 구비하고 있다. 산업화 단계나 자원보유 측면에서 상호 보완성이 높은 한 중 일 3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간다면 이 지역의 무한한 성장 잠재력은 곧 현재화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앞서 한 중 일 3국간에 상존하는 상호불신을 해소하고 미래지향적인 상호신뢰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3국이 함께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필자는 동북아개발은행의 설립 운영도 이러한 노력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동북아개발은행이야말로 한 중 일 3국이 손을 맞잡고 동북아지역의 지속적인 발전과 번영이라는 공동목표를 향해 일하도록 하는 중요한 기틀이 될 수 있다.
특히 잘못된 과거 역사의 상흔(傷痕)을 지우고 상호신뢰기반 구축에 앞장서야 할 일본이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위해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기대해본다. 아울러 한 중 일 국민 모두는 이웃나라와 더불어 살 줄 아는 공존 공영의 지혜를 펼쳐나가야만 한다. 친구와 이웃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나 있지만, 이웃나라는 좋든 싫든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것 아닌가.
사공 일(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