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교수의 희망열기]극단적 흑백논리 버리자

  • 입력 2000년 8월 20일 19시 07분


55주년을 맞은 광복절은 감격과 눈물의 며칠이었다. 상봉을 하는 이산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이 울었다.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으나 겨레가 겪는 통한의 아픔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누가 만든 비극의 결과였는가를 묻기도 했다.

그러나 반성해 보면 우리들 모두의 책임이었다. 외세의 운명적 작용이 컸던 것도 사실이고 양측 정치 지도자들의 과오와 실책도 없지는 않았다. 안 해야 할 일을 너무 많이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은 잘못이 없었다고 나설 사람은 없다. 이런 비극의 원인은 우리 민족 전체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의식구조와 잘못된 사고방식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앵글로색슨 민족과 같이 현실에 입각한 경험주의 사고를 가진 사회는 분열을 가져온 일이 거의 없었다.

대화를 통한 자기 반성과 개선의 노력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사회, 독일과 같은 민족은 감정적인 흥분이나 이해관계를 축소시킬 수 있는 객관적 가치를 추구하며 따를 수 있었기 때문에 일찍 통일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500년에 걸친 흑백논리와 양극논리 때문에 언제나 나와 우리는 100이고 상대방은 0이라는 형식논리를 버리지 못했다.

북(北)은 100이고 남(南)은 0이라고 생각했는가 하면 북을 버려야 남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극한적 사고를 반세기 동안 지속해 왔다.

아직 우리는 그런 현실을 노사관계나 여야의 정당 사이에서 발견하고 있는가 하면 의료계를 비롯한 지성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누구나 조선왕조의 파벌싸움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가 정치적 목적과 정권 유지의 차원에서 수없이 많은 허위의 수단이 되고 사회악의 과오를 지속시켜 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점에 있어서는 남북간의 공통된 잘못을 인정할 때가 온 것이다.

화해와 통일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진실이다. 통일 후에 남을 수 있는 것도 진실밖에는 없다. 통일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허위에 뿌리를 둔 수단과 방법은 마침내 버림을 받고 우리 모두의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만이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진실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의지가 없이 통일을 염원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말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갖춘 사람들이 통일의 건설자가 되는 것이다. 진실만을 말하고 따르는 민족적 의식구조가 요청되는 것이다.

이번의 이산가족 상봉을 본 우리는 두 가지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첫째는 통일에 대한 열망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애의 절대성이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는 성숙된 인간애, 끈질긴 휴머니즘의 정신으로 같은 민족의 길을 여는 일이다. 정치적 이념도 이미 우리를 구속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경제성장의 방향과 방법은 언제나 변화와 더불어 개선의 길을 찾도록 되어 있다.

하나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국민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에 있다.

더 많은 사람의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우리 민족의 비극을 초래했는가라고 묻는다면 6·25전쟁이다. 아직도 전쟁을 포함한 온갖 폭력을 죄악시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민족의 이름으로 배척해야 할 것이다. 폭력이란 물리적 힘이 용납될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인 사고인 것이다.

우리는 왜 통일을 갈망하고 있는가. 남북의 동포 모두가 서로 믿고 협력하며 정의롭게 살면서도 사랑이 구현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양심과 생명의 값이 인정받으며 인간 목적의 역사를 창출해내기 위해서인 것이다.

인간다운 사람을 위해서는 아직도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은 현실이다.

김형석(연세대 명예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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